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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종교적 신념이 깃들어있는 세계문화유산 건축 <요르단 vs 부다가야>



종교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끄는 세계문화유산이 있습니다. 바로 요르단과 인도의 부다가야입니다. 요르단은 성경의 역사와 함께하며 예수의 세례지인 베다니가 존재하는 곳입니다. 인도 복동부에 위치한 마을, 부다가야는 부처가 성불한 곳이자 불교가 시작된 성스러운 곳으로 알려져 있죠. 두 종교의 첫 역사가 시작된 곳인 요르단과 부다가야를 건축의 역사를 통해 더 깊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를 느낄 수 있는 곳, 요르단


이스라엘의 가장 큰 강인 요르단 강은 역사와 종교적 측면에서 성스러운 공간입니다. 성서의 내용에 등장하는 신비한 이야기들이 이곳에서 시작됐습니다. 요르단 강은 세례자 요한이 복음서에서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세례를 베푼 곳이자, 예수가 세례를 받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의 상징적 의미 때문에 요르단 강은 수백 년 동안 문화•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곳으로 그림으로 가장 많이 그려진 강이기도 합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지이자, 예수가 세례를 받으며 죽은 자를 소생시킨 장소인 ‘베다니’는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알카라르 와디’지역의 초입이자, 요르단 강에서 동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습니다. 베다니는 1996년부터 2002년까지 ‘알카라르’유적지가 발굴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 지역을 발굴하면서 로마와 비잔틴 시대의 세례 장소, 비잔틴 수도원, 비잔틴 교회, 은둔자와 수도승이 사용했던 동굴들이 발견됐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지, 베나디



베다니에는 이곳이 예수의 세례 장소라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가 많습니다. 6세기에 제작되어 현재 가장 오래된 모자이크 지도인 마다바(Madaba) 지도에 사해(死海) 바로 위쪽에 베다니에 세례 요한 기념교회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실제로 비잔틴 시대의 교회터와 세례를 행할 때 사용하던 웅덩이, 예수가 세례를 받고 나서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왔다는 내용을 그리스어로 새긴 모자이크 바닥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밖에 초기 기독교 순례자들의 일기와 로마 시대의 이정표 등도 이곳이 예수의 세례 장소임을 뒷받침합니다. 2000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베다니를 방문해 세례 유적을 순례함으로써 이곳이 예수의 세례 장소임을 각인시킨 바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국 초기의 예언자 엘리야가 불마차를 타고 승천한 곳, 엘리야의 언덕



베다니 유적지에는 이스라엘 왕국 초기의 예언자 엘리야가 불마차를 타고 승천한 곳, 즉 ‘엘리야 언덕’이라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엘리야가 불마차를 타고 회오리바람 속으로 들어가 하늘로 올라간 장소가 바로 이곳이라고 전하며, 마다바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의 성지이자 예수가 세례를 받으며 죽은 자를 소생시킨 장소였던 베다니의 한 교회



베다니는 세례 요한이 20여 년간 살았다고 알려졌지만 이스라엘은 이곳을 기독교 성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2000년 1월, 베다니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세례식에 교회 지도자를 비롯한 4만 명이 방문했습니다. 이 때 교황은 베다니를 기독교 성지로 인정했고, 2002년에 요르단 왕국은 교황의 의견을 받아들여 베다니를 기독교 성지로 임명했습니다. 이후 베다니는 관광지로 개방됐고 이제는 한 해 20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거대하고 웅장한 부다가야의 불상



많은 불교도들이 찾는 불교 성지, 부다가야


부다가야는 부처가 성불한 곳으로, 인도 북동부 비하르(Bihar)주 가야(Gaya)시에서 11km 떨어진 곳에 있는 자그마한 도시입니다. 부다가야는 부처의 탄생지인 룸비니, 최초의 설법지 녹야원(사르나트), 열반지 쿠시나가르와 함께 불교의 4대 성지로 불립니다. 참된 깨달음을 희망하는 스님과 불자들에게는 불교의 참모습과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가장 불교다운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자리에는 기원전 3세기경에 아소카왕이 세웠다는 마하보디 대탑, 즉 대보리사가 세워져 있습니다. 대보리사는 아소카왕이 부처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는데, 12세기 인도를 침입한 이슬람 세력에 의해 파괴되고 버려져 황폐해졌습니다. 이후 1883년 영국의 컨닝햄이라는 역사학자에 의해 발굴이 이루어지면서 인도 정부가 복원했습니다.


대보리사는 탑형으로 된 사원입니다. 탑 내부에 법당이 있고, 그곳에 불상을 모신 형태입니다. 높이가 55m나 되는 이 탑은 방추형의 9층 탑으로 3km 떨어진 곳에서도 보일 정도로 거대하고 웅장합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현재의 탑은 아소카왕 때 세워진 것은 아니고 409년과 637년 사이에 세워진 것이라 추측합니다.



높이가 55m나 되는 방추형의 9층 탑으로 된 대보리사 전경



대탑 주위에는 세계 각지의 불교도들이 건립한 봉헌탑이 있으며, 외벽 감실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대탑 서쪽에 있는 금강보좌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자리로 앞에 보리수 한그루가 심어져 있고, 대탑 남서쪽에는 석가모니가 고행을 끝내고 목욕을 한 연못이 남아있습니다. 이 밖에도 부다가야 근처에는 부처가 깨닫기 전에 수행하던 장소인 전정각산(前正覺山)과 고행을 마치고 수자타로부터 공양죽을 받아 먹은 우루빌라 등 부처의 깨달음과 관련된 유적지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부다가야의 대보리사 대탑과 보리수 주변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스님들과 불자들이 예불을 드리거나 수행을 합니다. 불교의 4대성지 중에서도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많은 순례자들이 찾고 있는 부다가야는 또 다른 부처의 탄생을 기다리며 숱한 사람들이 오늘도 수행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인류와 유구한 역사를 함께한 종교는 인간의 삶의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해당 종교를 지닌 사람에게 종교의 시발점으로 불리는 장소는 성지와 같죠. 오랜 세월 수 많은 사람에게 종교의 의미를 부여한 두 건축물이 굳건한 모습으로 역사를 이어가길 희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