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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명작 속 숨은 경제학] 네덜란드 희대의 튤립투기 ‘튤립 버블’ 사건



17세기 네덜란드 귀족들 사이에서는 아름답게 가꾼 정원이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정원에 심는 꽃들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튤립은 종종 고가에 거래되곤 했는데요. 치솟는 튤립 가격 탓에 네덜란드에는 튤립 투기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귀족뿐만 아니라 시민들까지 투기에 가담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그 인기도 잠시, 튤립 가격이 폭락하면서 네덜란드 경제는 공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 튤립 광풍을 풍자한 명작들은 튤립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화폭에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집 한 채의 가치를 지닌 튤립이 오줌받이로 전락하기까지의 과정을 명화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튤립 한 송이가 집 한 채가 되기까지





투기(投機)란 생산 활동과는 관계없이 기회를 틈타 큰 이익을 보려는 행위입니다. 즉, 생산 활동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투자와 다르게 투기는 장기적 미래소득에 대한 확신 없이 일종의 모험적 매매를 통해 차익을 노리는 행위입니다. 


보통 부동산과 주식이 투기의 대상이 되는데, 17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은 튤립으로 투기에 열을 올렸습니다.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튤립은 어떤 존재였기에 한낱 꽃에 불과한 튤립이 투기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1610년대 당시 네덜란드 귀족들은 고급스러운 정원으로 부와 교양을 과시했습니다. 왕관을 닮은 꽃봉오리, 쭉 뻗은 잎사귀를 가진 기품 있는 튤립은 그들의 정원에 제격이었습니다. 귀족들은 희귀한 튤립이 마치 부의 척도인 양 앞다투어 희귀종을 사들였습니다.


튤립의 가치가 높아진 만큼 가격도 덩달아 치솟았습니다. 특히 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희귀한 줄무늬의 셈페르 아우구스투스, 언제나 존엄한 이라는 뜻을 가진 이 튤립은 튤립 투기가 절정이던 1630년대에 들어서 한 뿌리에 5,500플로린, 즉 황소 465마리와 맞먹는 가격에 거래되었습니다. 튤립의 현재 가치는 잊어버린 채, 지금처럼 튤립 가격이 앞으로도 오르리라는 헛된 기대가 튤립의 값을 부풀린 것입니다. 





마치 맥주가 실제보다 많아 보이게 만드는 거품처럼 튤립의 가치를 부풀린 ‘튤립 버블’이 형성되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버블을 자산의 시장가치가 급격히 팽창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즉, 미래에 예상되는 자산의 가치에 대해 너무 낙관적인 기대를 가질 경우, 수요가 급증해 버블이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스 볼론기르 │ 꽃 정물화 │ 1644 │ 패널에 유채



그 당시 튤립 버블의 상황은 튤립 가격 덕에 고급 튤립 품종의 구근을 팔아 집을 마련했다는 사람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때문에 튤립으로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신분을 막론하고 너 나 할 것 없이 튤립을 사들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튤립은 더 이상 꽃이 아닌 투기의 대상이었습니다.



우중들을 향한 튤립 투기 풍자화



헨드리크 포크 │ 플로라와 바보들의 수레 │ 1640 │ 목판에 유채



화가 헨드리크 포트의 그림 <플로라와 바보들의 수레>는 극에 달한 튤립 투기의 상황을 여실히 나타내는 작품입니다. 돛을 단 커다란 수레 위 높은 자리에는 튤립이 그려진 깃발이 휘날리고 있습니다. 거기엔 그리스•로마 신화 속 꽃의 여신 플로라가 군중들을 유혹하듯 값비싼 줄무늬 튤립을 한 아름 안고 있습니다. 


수레에 앉아있는 남자 세 명은 머리에 튤립을 꽂고 있는데요. 이 세 남자는 튤립 투기가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 즉 헛된 희망이 담긴 탐욕과 헛소문을 상징합니다. 돈 자루를 든 영감은 탐욕, 길쭉한 잔을 들고 술을 퍼 마시는 남자는 탐식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배 끝에 앉은 남자는 헛소문을 상징하는데, 그는 ‘누가 튤립으로 떼돈을 벌었다더라’ 하는 소문을 퍼트리면서 수레를 따라오는 군중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군중들은 네덜란드 하를렘 시의 직공들로서, 생업도 내팽개치고 수레를 뒤쫓고 있는 중입니다. 왜 그들은 튤립 투기에 뛰어들었을까요? 당시 숙련된 장인이 아무리 열심히 노동을 한다 해도 튤립 하나의 가치도 못했으니, 불로소득의 달콤함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튤립 버블의 붕괴


제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시들기 마련입니다. 튤립 역시 오를 대로 오른 가격 때문에 더 이상 사려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튤립을 사들였던 사람들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헐값에라도 튤립을 처분하려 했습니다. 튤립 투기를 만들어 낸 헛소문만큼, 튤립 가격 폭락에 대한 불안감 역시 순식간에 퍼져나가 너도나도 튤립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1637년, 결국 튤립의 거품이 가라앉으며 가격이 폭락하게 됩니다. 어음은 부도가 나고, 사람들은 빚더미에 안게 되었습니다. 플랑드르의 화가 얀 브뢰헬 2세가 1640년경 그린 <튤립 광풍 풍자화>에는 튤립 버블이 붕괴된 처참한 상황이 나타납니다. 



얀 브뢰헬 2세 │ 튤립 광풍 풍자화 │ 1640 │ 패널에 유채



그림 속 한 원숭이는 붉은 줄무늬 튤립을 내팽개치고 분노의 오줌을 내갈깁니다. 귀하고 귀했던 튤립은 이제 그저 식물에 지나지 않게 된 것입니다. 튤립을 든 채 눈물을 훔치는 원숭이도 보이고, 오른쪽 묘지에는 장례행렬까지 보입니다. 튤립 값 폭락으로 빚더미에 앉아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원숭이의 운구 행렬일 것입니다. 이렇게 화가 얀 브뢰헬은 튤립 투기자들을 멍청한 원숭이로 비유하여 조롱했습니다.



튤립 광풍을 기억하라


튤립 광풍이 휩쓸고 간 네덜란드 경제는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렸습니다. 아름답기만 하던 튤립에 독을 품게 한 것은 바로 사람들이었고, 제 스스로 그 독에 취해버린 것도 사람들이었습니다.



필리프 드 샹파뉴 │ 바니타스 │ 1671 │ 판자에 유채



플랑드르 출신의 프랑스 화가 필리프 드 샹파뉴는 헛됨이라는 의미를 가진 <바니타스>라는 그림을 통해 튤립 투기에 가담했던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교훈의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이 작품 속에는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해골이 등장합니다. 그 옆엔 한 때 부의 상징이었던 셈페르 아우구스투스가 우아한 자태로 화병에 담겨있습니다. 죽음 앞에선 그 어떤 부귀영화도 부질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튤립 광풍의 공포를 되새길 수 있는 <바니타스> 그림은 타락한 네덜란드 사람들이 집 한 쪽에 걸어두었어야 할 그림이었던 것 같습니다. 





경제학에서는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과 더불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1980년대 일본의 부동산 버블을 대표적인 버블 경제 시기로 손꼽습니다. 네덜란드와 일본의 사례가 보여주듯 투기로 인한 화려한 거품이 가라앉고 난 뒤에는 불행과 초라함만 남을 뿐입니다. 17세기 튤립 버블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튤립은 튤립다울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