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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서호주 철도 정비소 워크숍, 미들랜드를 정비하다



과거 서호주 미들랜드 시는 한낱 정착촌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지역을 도심으로 성장케 한 것은 대규모 철도 정비소, 워크숍입니다. 하지만 산업구조의 변화와 낮은 효율성으로 워크숍은 결국 폐쇄 되었습니다. 미들랜드 재개발기구(MRA)는 워크숍의 역사적 가치를 활용하여 미들랜드 시 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정부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미들랜드는 이제 서호주의 문화유산으로 당당히 자리 매김 했습니다. 철도 정비소 ‘워크숍’의 파란만장 일대기를 소개합니다.  



철도 정비소 워크숍의 흥망성쇠


1885년, 200km 남짓에 불과했던 서호주의 철도가 20년 후 2,583km까지 확장되면서 미들랜드 지역에는 서호주 내 가장 큰 공공 철도 정비소, 워크숍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 정비소는 서호주 철도 네트워크의 중심적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품, 방위 물자를 제조하는 곳이기도 했고 개인 철도 정비 사업체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서호주 내에서 철도 정비소뿐만 아니라 다양한 역할을 한 워크숍은 미들랜드 지역의 든든한 울타리로 거듭났습니다. 이런 워크숍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는 병원, 여가시설 등의 기반시설을 설립했고 노동자들을 위한 주택도 증설하였습니다.



최신식 침대 326개를 보유한 미들랜드 종합병원



하지만 1970년대 후반, 공공기관이었던 워크숍에서 전문적으로 생산하던 화물차를 개인 철도 정비사업체에서 생산하기 시작하며 개인 사업체와 치열한 경쟁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노후한 워크숍 장비와 비위생적인 환경은 노동자들의 건강마저 해쳤습니다. 


결국 효율성의 저하로 워크숍의 위상은 떨어져만 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1992년 미들랜드 정부는 워크숍 생산성과 경쟁력 향상을 위해 자본 투자를 결정하며 다시금 워크숍의 재개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개인 기업체의 거센 반발에 1994년 워크숍의 최종 폐쇄가 결정되었습니다. 



예술가 작업실로 활용되고 있는 미들랜드 건물 모습 (사진 출처: MRA 홈페이지)



워크숍의 폐쇄로 많은 노동자들은 배신감을 느꼈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정신적, 육체적 질병에 고통 받기도 했고 급기야 몇몇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워크숍은 노동자들의 한이 서린 채 가동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워크숍은 철도 정비소로서 90여 년간 큰 역할을 해왔기에 그 일대는 기반시설도 잘 갖추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대로 방치하기엔 교통시설도 양호했고 호텔, 병원, 편의시설 등의 보존상태도 훌륭했기에 철도 정비소 일대가 새롭게 개발될 여지는 충분했습니다. 6년 후, 서호주 정부는 미들랜드 재개발기구(MRA)를 설립하면서 워크숍 재생사업에 본격적으로 돌입했습니다.



MRA의 미들랜드 재생 프로젝트


미들랜드 재개발기구(MRA)는 2000년에 구 철도정비소 워크숍을 중심으로 미들랜드 시 전체를 재개발하는 계획안을 발표했습니다. 미들랜드 시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삼 개월 간 쇼핑센터, 공공기관 등 장소 별로 계획안을 배포했고, 이후엔 지역 신문에 미들랜드 워크숍 개발에 관한 칼럼을 게재하여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첫 프로젝트는 ‘노동자의 벽 설립’이었습니다. 1904년부터 1994년까지 이곳에서 일했던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 벽돌 하나에 노동자 한 명을 의미하는 노동자의 벽을 세운 것입니다. 



벽돌 하나에 노동자 한 명을 의미하는 노동자의 벽



이후 미들랜드 재개발기구는 워크숍 지역을 포함하여 미들랜드 시를 네 가지 영역으로 구분하여 개발하였습니다. 여가시설의 중심지이자 문화유산 관련 예술 활동을 즐길 수 있는 도시중심지구, 경찰서, 보건•의료대학 등 대규모 공공건물이 입지한 클레이턴 지구, 과거 워크숍과 우드브리지 호수가 있던 헬레나 지구, 산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동부 기업지구가 이에 해당합니다. 



대규모 매장이 모인 미들랜드의 상업 중심지, 도시중심지구



도시중심지구는 기차역을 기반으로 미들랜드의 교통중심이 되는 곳입니다. 클레이턴 지구는 서호주에서 가장 큰 경찰서를 설립하여 1,000여 명의 경찰관을 고용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워크숍 노동자들에게 그랬듯, 헬레나 지구의 우드브리지 레이크 지역은 고용된 경찰관들의 주거단지로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우드브리지 호수에 위치한 콜댐공원 뒤쪽으로 주거단지가 위치해 있다



특히 헬레나 지구는 워크숍 건물이 있던 곳으로 산업폐기물로 오염된 토양을 정화시켜 철도광장을 통해 철도 유산과 조화를 이루는 교육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워크숍이 있던 철도광장에 첫 번째로 세워진 이 건물은 철도산업의 문화유산이자 지역민들의 축제공간이다



또한 노동자의 벽이 세워진 곳으로, 길거리 조형물, 분수, 워크숍 노동자들의 유대감을 나타내는 철제 예술품 등을 설치해 지역의 문화와 커뮤니티 강화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술가 캐스휘틀리의 철제 조형물 ‘글래드스턴 백’을 든 세 명의 노동자들




동부 기업지구는 지역 자체를 개발하기보단 토지 분양을 통해 개발된 지역으로, 하비노먼 피벗그룹 컨소시엄이 일부 면적을 매입하여 하비노먼 가구 매장을 건립하였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대규모 가구•가전 매장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쇼핑을 목적으로 하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서호주의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다


재개발 10년 후인 2010년, 미들랜드 시는 서호주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미들랜드 시 자체가 문화유산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20세기 초 철도 정비소가 손상되지 않은 채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서호주의 가장 중요한 산업단지로 90여 년간 서호주의 경제와 노동자들 삶의 중심부로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들랜드 대학



희로애락이 담긴 워크숍 노동자들의 삶에 가치를 두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음으로써 미들랜드 시는 과거 철도 네트워크 중심지로서 뽐내던 위상을 되찾았습니다. 시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워크숍 노동자들의 애환이 깃든 이 도시는 지금도 주요 관공서가 들어서고, 국제학교와 의료시설이 유치되는 등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으며 앞으로도 끊임없는 성장만을 꿈꾸고 있습니다.





서호주 미들랜드의 철도 정비소 워크숍 재생 사례는 한 때 번성했던 도시의 역사적 가치를 간과하지 않고 부활의 실마리로 가치 있게 여긴 미들랜드 재개발기구(MRA)의 혜안이 돋보이는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맹목적인 신축•신설 보다는 건물 및 도시의 역사적 가치를 재평가하여 재생하고 재사용하는 사례가 더욱 많아지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