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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고철로 만든 친환경 도시 테마공원! 독일 뒤스부르크 환경공원


쇳덩어리 고철과 친환경이라는 말의 조합이 낯설게 느껴지나요? 독일 뒤스부르크 환경공원은 고철과 친환경의 이색적인 조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습니다. 1980년대, 독일 경제발전의 핵심 역할을 했던 티센 제철소가 문을 닫자 ‘뒤스부르크(Duisburg)’는 활력을 잃은 도시로 전락했습니다. 하지만 조경건축가 피터 라츠의 아이디어 덕분에 티센 제철소는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즐거운 테마 공원으로 대변신 할 수 있었는데요. 티센 제철소부터 뒤스부르크 환경공원까지, 어떤 변화의 과정을 거쳤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티센 제철소, 굴뚝의 연기가 멎어버리다


독일의 경제 발전은 라인 강을 따라 인접한 크고 작은 여러 지역에서 출발했습니다. ‘뒤스부르크’도 그 많은 도시 중 하나로 이 곳에는 한때 유럽 최대 규모의 철강회사 중 하나였던 ‘티센(Thyssen) 제철소’가 자리했었습니다. 60만 평의 광활한 대지에서 굉음과 새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가동되던 티센 제철소는 철강 대국 독일 신화의 아이콘으로 여겨졌습니다.


지금은 환경적인 측면에서 공장의 연기가 비난의 대상이지만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경제성장의 상징이자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철강산업의 쇠락으로 티센 제철소는 화려한 영광을 뒤로한 채 1985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가동을 멈춘 티센 제철소의 옛 모습 (출처: 뒤스부르크 환경공원 홈페이지)



뒤스부르크는 물론이고 주변 지역의 주민들에게 티센 제철소는 삶의 터전이었으며, 철강산업은 경제적 측면에서 도시 전체를 지탱하는 핵심이었습니다. 결국 제철소의 몰락은 곧 뒤스부르크 전체의 쇠퇴로 이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강변에 방치된 각종 철강공장 시설과 운송 철로, 수로, 고철 더미 등은 강 주변과 도시 일대를 심각하게 오염시켰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상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녹슨 고철에서 흘러내리는 검붉은 녹물과 화공약품 더미에서 풍기는 독성 가득한 악취는 사람들을 공포에 빠지게 했습니다. 환경오염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지만 티센 제철소의 엄청난 규모 때문에 뒤스부르크는 현실적인 방안을 쉽게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1997년,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변화가 티센 제철소에서 일어났습니다. 60만 평에 이르는 죽은 철강 공장 부지가 ‘뒤스부르크 환경공원(Duisburg Landschaftspark)’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입니다.



녹슨 고철더미를 친환경의 밑바탕으로


티센 제철소 재생 사업 논의는 1989년 뒤스부르크에서 개최된 ‘엠셔 공원 건축박람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박람회는 상업적 발전 목적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뒤스부르크를 포함한 낙후된 지역 일대의 변화와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습니다.


지역의 도시계획가, 건축가, 조경가, 환경전문가, 사회학자 등 각계 각층의 전문가들이 모여 다양한 도시 재생 방안을 논의했고, 여기서 나온 의견들은 다른 지역은 물론 새로운 뒤스부르크를 창조하는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그 중 조경건축가 ‘피터 라츠(Peter Latz)’의 아이디어가 시선을 끌었습니다. 라츠는 기존에 흔히 접할 수 있는 ‘도시공원’과 ‘생태보존’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새롭게 해석한 창의적 개념을 선보였습니다.


그것은 정부와 시민 모두가 뒤스부르크 쇠락의 주원인으로 꼽는 티센 제철소를 최대한 활용해 친환경 공원으로 재탄생 시킨다는 제안이었습니다. 공장 시설을 제거하고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금세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낡은 고철 덩어리들을 최대한 활용해 공간변화에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의견이었습니다.





▲ 곳곳에 남겨진 시설물 자체가 친환경 공원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모습



녹지를 기반으로 한 완전히 새로운 친환경 공원을 조성할 경우, 제철소 부지에 버려진 엄청난 양의 고철들을 처리하는 비용이 공원 조성에 버금갈 수도 있었습니다. 장소성과 역사성에 대한 고민이 더해진 라츠의 제안은 산업사회 주요 지역들이 갖고 있는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철소, 환경의 옷으로 갈아입다





 줄타기 연습장으로 바뀐 공장 설비물 (출처: 뒤스부르크 환경공원 홈페이지)



티센 제철소의 활용은 기존 산업 시설을 각종 레크리에이션을 위한 시설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감상하는 수준의 환경공원이 아닌, 공간에 기능성을 더했습니다.





 도시 전망대로 바뀐 제철소 굴뚝 (출처: 뒤스부르크 환경공원 홈페이지)



뒤스부르크 환경공원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티센 제철소의 놀라운 변신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시커먼 연기를 뿜던 굴뚝은 도시를 감상하는 전망대로, 우뚝 솟은 공장 설비물 사이에는 강철을 연결해 만든 근사한 줄타기 연습장이 되었고, 주변 일대에서 실어온 쇠를 녹이던 펄펄 끓는 용광로는 물을 채워 스킨스쿠버장으로 바뀌었습니다.





▲ 다양한 난이도를 갖춘 암벽 등반 코스로 변신한 광석 저장고의 외벽



또한, 물과 연료 등을 공급하던 대형 철재 파이프는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는 근사한 어린이용 미끄럼틀로, 광석 저장고의 외벽은 다양한 난이도를 갖춘 암벽 등반 코스로 변신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직접 보기 전까지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접목되었습니다. 





▲ 대규모 전시장이 된 대형창고



그밖에 대형 엔진과 각종 설비물이 놓였던 공장은 무대와 객석을 설치해 공연장과 회의나 전시를 할 수 있는 컨벤션 센터가 되었고, 각종 철강 자재를 쌓아두던 창고는 실험실과 사무실이 되었습니다. 주말이면 가족, 친구, 직장 동료들이 어우러져 다양한 여가 활동을 즐기고, 전시장에서는 신차를 발표하는 행사가 열립니다. 젊은 층들 사이에서는 결혼식이나 약혼식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습니다.


고철로 조성된 테마공원이 상상 이상의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연간 방문객이 무려 50만 명에 달하며, 그 중 상당수는 단순 방문이 아니라 1박 2일 혹은 그 이상으로 머문다고 합니다. 예상을 초월한 결과임에 틀림없습니다.





 친환경 공원으로 탈바꿈한 티센 제철소의 야경



뒤스부르크 환경공원이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폐기될 수 있었던 공간을 되살린 것은 물론, 관람의 장소가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용하고, 참여하고, 즐기는 장소로 생명력을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산업유산을 품은 ‘21세기형 도시공원’의 탄생입니다. 




 자유롭게 산책을 즐기는 가족의 모습 (출처: 뒤스부르크 환경공원 홈페이지)



새로운 공원은 뒤스부르크에 대한 인식마저 변화시켰습니다. 독일은 물론 유럽에서도 더 이상 쇠퇴한 산업도시가 아니라 가장 모범적인 친환경 도시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뒤스부르크만의 독특한 도시재생은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발상이 있었기에 성공적으로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해당 글은 신도리코 사내보 12월호 내용입니다

참고서적 :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김정우, 돌베게,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