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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밥상 인문학] 가늘고 길게 사는 법 ‘면 이야기’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어야 제 맛인 면은 길고 긴 면발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합니다. 4,000여 년 동안 우리와 일상을 함께한 면은 그만큼 담고 있는 이야기도 많은데요. 우리가 먹는 수많은 면 요리의 언어학적 의미와 역사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귀하디 귀한 몸, 국수


한국인들의 주식은 밥이지만, 현재 우리 식문화에서 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습니다. 갖춰 먹으면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손색없고, 출출할 때는 간단한 요깃거리로 그만인 면 요리는 빠질 수 없는 메뉴입니다.


어디서나 손쉽게 면류 재료를 구해 조리해 먹을 수 있게 되면서 밥이 주식이던 시대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삼시 세끼 면을 외치며 밥보다 면을 더 선호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죠.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먹는 면의 역사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사실 옛날부터 한국인과 면은 절대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먹는 잔치국수는 과거 잔치가 열릴 때만 먹는 전통음식이었습니다. 또한 냉면도 한국만의 독자적인 음식문화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국수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가늘고 긴 면발에 있습니다. 면은 가늘고 길기 때문에 익히기 쉽고 양념이나 간이 골고루 배어 맛을 내기 좋습니다. 또한 면의 종류에 따라 독특한 식감을 느낄 수 있어 분식부터 고급 음식까지 두루 활용됩니다.


국수는 통밀을 갈아서 가루를 만들고, 이 가루를 치대서 반죽을 만든 뒤 이것을 다시 가늘고 긴 면발로 만들어내야 하는데, 이 작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통밀을 구하는 과정과 제작 공정이 어려워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았습니다.


귀하디 귀한 음식이니 제사를 지내거나 잔치가 열릴 때만 국수를 먹었는데요. 생일에 먹으면 장수한다고 여겼고 결혼식에서 국수를 대접하면 백년해로한다 믿었습니다. 면발이 긴 ‘명 길이 국수’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면 요리


우리가 먹는 면 요리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뜨거운 국물에 담가 먹는 면, 소스에 찍어 먹는 면, 기름에 튀겨낸 면, 달달 볶아낸 면, 차가운 국물에 담근 면 등 조리법과 그 종류는 어마어마합니다. 4,000년 전 중국에서 아시아로 퍼져나가고, 실크로드를 통해 이탈리아로 퍼져 나가기까지 다양한 인류의 수만큼이나 면 요리도 탄생과 진화를 거듭해왔습니다.





제일 먼저 쫄면의 탄생 배경을 살펴볼까요? 쫄면은 냉면 덕분에 탄생했습니다. 면의 굵기와 모양을 결정하는 사출기가 잘못 끼워진 탓인지 가느다란 냉면 대신 굵직한 면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냥 버리기 아까웠던 가게 사장은 인근의 분식집에 싼값에 팔았죠. 


분식집 주인은 전분이 많이 들어있어 고무줄만큼이나 질긴 면의 특징을 살리고 새콤달콤한 양념을 더 해 쫄면이란 이름으로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쫄면은 ‘쫄깃한 면’을 줄인 말이니 이보다 더 면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이름도 없습니다.





냉면은 어떨까요? 사실 냉면은 전형적인 한국 음식입니다. 중국에도 냉면이 있지만, ‘차게 먹는 국수’란 뜻일 뿐, 우리나라처럼 특화된 음식은 아닙니다. 일본에도 메밀로 만든 면을 차게 먹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사계절 즐겨 먹진 않죠. 


냉면은 지역에 따라, 만든 모양에 따라 구별됩니다. 흔히 함흥냉면과 평양냉면 두 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함흥냉면은 전분을 많이 섞어 가늘고 질기게 뽑아낸 면을 양념에 비벼 먹는 비빔냉면입니다. 평양냉면은 메밀을 주재료로 면을 굵게 뽑아내어 육수에 말아먹는 물냉면을 말합니다. 두 음식 모두 차게 해서 먹는다는 점 때문에 냉면이라 불립니다.





북쪽에 냉면이 있다면 남쪽에는 막국수가 있습니다. 막국수도 메밀을 주재료로 만드는 국수인데, 이름 앞에 ‘막’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어 쉽게 만들어 후루룩 먹는 국수의 느낌이 납니다. 하지만 막국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면 막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막국수는 껍질만 벗겨낸 거친 메밀가루로 만듭니다. 때로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가루를 낸 것을 섞기도 하는데, 그러다 보니 거뭇거뭇한 것이 면 속에 박혀 있어 거칠게 보입니다. 표백제가 첨가된 곱고 하얀 밀가루 보다, 양분을 고스란히 담아 막 갈아서 뽑아낸 막국수가 건강에는 더 좋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짜장면은 이름 그대로 면이 주연인 음식입니다. 부르는 사람에 따라 짜장면이 되기도, 자장면이 되기도 해 어떤 말이 표준어인지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중국집에 가면 짜장면이라고 써있고, 현실에서도 짜장면으로 발음하지만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장면이 옳은 말입니다. 결국 현재는 짜장면과 자장면 모두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짜장면의 영원한 친구 짬뽕은 한•중•일 3국의 합작품입니다. 중국에서 출발해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완성됐죠. 짬뽕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중국의 화교가 일본에서 국수를 만들어 팔던 것이 한국에까지 흘러 들어왔다는 말이 가장 유력합니다. 일본의 짬뽕은 맵기는 하지만 고춧가루를 쓰지 않아 국물이 흰색인데, 한국에 들어오면서 고춧가루가 더해져 오늘날 빨간 국물의 짬뽕 색과 얼큰한 맛을 갖추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아시아를 넘어 이탈리아는 어떨까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밀가루 반죽을 우리보다 더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 먹는습니다. 흔히 이탈리아 요리하면 피자와 스파게티를 떠올립니다. 면이 길죽한 모양이면 통틀어 파스타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파스타는 밀가루 반죽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만든 것을 총칭한 말입니다. 그 중 우리나라의 국수처럼 길게 뽑아낸 것은 스파게티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식생활에서 면은 더욱 기발하고, 더욱 맛있고, 더욱 건강해진 음식으로 나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사실 면의 기원이 어디이며, 누구 손에 개발되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어떻게 먹는가’가 중요하죠. 어떤 음식이든 맛있게 잘 먹으면 국수처럼 길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면 요리로 한끼 식사, 어떤가요?


해당 글은 신도리코 사내보 2월호 내용입니다.

참고서적: 우리 음식의 언어 (한성우, 어크로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