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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밥상 인문학] 토마토는 과일인가, 채소인가?



토마토는 채소일까, 과일일까요? 과일 가게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토마토는 ‘법적으로’ 채소라 분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토마토는 물론 오이, 참외, 호박, 수박 등에 얽힌 언어학적 이야기와 채소와 과일 구별법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토마토, 채소냐 과일이냐 영원한 숙제


180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토마토가 과연 채소인가 과일인가에 대해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농산물에 매겨지는 관세 때문이었는데요. 예나 지금이나 관세는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큰데, 미국이 채소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토마토를 채소로 분류해 관세를 부과하자, 토마토 수입업자가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이에 미국 대법원은 토마토를 식사 후에 먹는 디저트가 아니라, 요리에 사용하는 점을 들어 채소라고 규정해버렸고, 업자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후 토마토는 ‘법적으로’ 채소가 됐습니다.





‘토마토’는 과연 채소일까요? 아님 과일일까요? 토마토를 과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순수하면서도 솔직한 사람이고, 토마토를 채소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디선가 듣고 읽은 것을 바탕으로 말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토마토를 과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김새도 그렇고 용도도 과일에 가깝습니다. 마트나 시장을 가면 토마토는 대부분 과일 가게에서 판매합니다. 요즘에야 토마토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가 많아졌지만, 토마토는 역시 식사를 하고 난 뒤, 설탕을 뿌려 달콤하게 먹는 맛이 최고입니다.


미국에서 제멋대로 토마토를 채소로 판결 내렸다고 해도, 과일이 채소로 바뀌는 건 아닙니다. 물론 토마토는 ‘과채류’이니 과일 대신 먹는 채소라고 하면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오이와 참외는 같은 말?!


시원한 맛이 일품인 ‘오이’는 어떨까요? 오이는 여름을 대표하는 채소입니다. 아삭아삭 씹는 식감과 상큼함이 특징으로, 여름에 많이 찾는 냉면이나 콩국수, 냉국 등 찬 음식에 빠지지 않고 꼭 곁들입니다.


한편 참외는 ‘수박’과 함께 여름을 대표하는 과일입니다. 그런데 오이와 참외의 이름이 유사합니다. 이름의 유사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세종대왕 시절의 ‘외’는 오늘날과 발음이 달랐음을 생각해보면 됩니다. 본래 한 음절의 ‘외’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두 음절의 ‘오이’로 바뀌었습니다. 방언에서는 ‘오이’가 ‘웨’, ‘왜’, ‘에’, ‘애’, ‘이’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예들은 ‘외’를 전제로 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도 못 믿겠다면 오이의 다른 이름인 ‘물외’가 버젓이 사전에 올라와 있다는 것을 확인해보면 됩니다.





‘참’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평소 알고 있는 것이라면 ‘거짓’이 되겠지만, 식물의 세계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참외는 ‘진짜 오이’라는 뜻입니다. 오이 중에 ‘달고 맛있는 오이’를 참외라고 따로 부릅니다. 그렇다 보니 본래의 오이와 참외를 구별해 불러야 할 상황이 생기게 되는데, 그래서 만들어진 말이 ‘물외’입니다. 그렇다고 ‘가짜 오이’란 뜻은 아니고, ‘참외만큼은 달지 않은 오이’란 뜻입니다.


오이가 채소라면 물외든 참외든 모두 채소여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물외는 채소이고, 참외는 과일입니다. 참외로 장아찌를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오이는 주로 요리를 할 때 쓰이고, 참외는 후식으로 먹으니 그 분류가 맞는 것입니다.





엇갈린 운명의 호박과 수박


‘호박’과 ‘수박’의 관계도 재미있습니다. 누구나 호박은 채소로 생각하고, 수박은 과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김새나 이름을 보면 너무 닮았습니다. 모두 ‘박’과에 속하고 둘 다 이름 끝에 ‘박’이 들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의 운명은 너무도 다른데요. 노랗게 익은 호박은 모양이나 빛깔을 보면 과일로 분류될 법도 한데 전혀 아닙니다. 날로 단맛을 즐기며 먹을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운명이 갈린 것입니다.


호박이든 수박이든 모두 박을 가지고 있으니 ‘호’와 ‘수’를 분리해 낼 수 있는데, 그 뜻과 소리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릅니다. ‘호’는 중국을 뜻하는 ‘胡(오랑캐 호)’이고, 수는 물을 뜻하는 ‘水(물 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호주머니’, ‘호떡’ 등 중국에서 전해 내려온 것에 흔히 ‘호’가 붙으니 그럴 법합니다. 수박을 ‘수과(水瓜)’라고도 부르는 것을 보았을 때 신빙성이 있는 이름입니다.





문제는 말소리의 길이입니다. 요즘은 소리의 길고 짧음으로 단어를 구분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호박과 수박은 모두 긴소리로서 [호:박], [수:박]으로 발음됩니다. 물론 ‘胡(호)’와 ‘水(수)’는 짧은소리여서 한자대로라면 [호박] [수박]으로 소리가 나야 합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우리말에는 박 앞에 오는 소리가 길어져야 하는 법칙은 없습니다. 예외가 둘이나 되는 것이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토마토에 대한 채소인가 과일인가 논쟁은 경제 논리로 인해 생겨난 해프닝에 불과합니다. 오이, 참외, 호박, 수박의 이름만으로 채소인지 과일인지 구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우리에게는 채소와 과일을 구분하는 쉬운 구별법이 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음식과 함께 먹을 수 있으면 채소이고, 밥을 먹고 나서 또는 밥 때와 관계없이 단독으로 먹으면 과일인 것입니다. 달고 시원한 맛을 즐긴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일의 특징입니다. 무더운 여름이면 식사를 하고 난 뒤 후식으로 오이보다는 참외나 수박을 찾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해당 글은 신도리코 사내보 3월호 내용입니다.

참고서적: 우리 음식의 언어 (어크로스, 한성우,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