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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밥상 인문학] 물고기 이름으로 알아보는 스토리텔링의 미학



‘가을 전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전어, '밴댕이 소갈딱지'라고 불리며 속 좁은 사람을 비유하는 말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밴댕이, 자린고비들의 영원한 친구 굴비까지 물고기의 이름만 들어도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구전동화처럼 전해져 오는 이야기는 소소한 즐거움을 주기도 하는데요. 물고기의 이름에 대체 어떠한 사연이 얽혀있는지 속 시원히 파헤쳐 봅니다.



물고기도 이름이 있다  





사람들은 물에 사는 동물을 다 통틀어 그냥 ‘물고기’라 부릅니다. 물에 사는 동물들은 참 억울할 법도 합니다. 번듯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제대로 불리는 일이 없으니까요.


물고기는 말 그대로 물에 사는 고기입니다. 고기는 생명체가 아니라 사람의 먹거리입니다. 그러니 물고기는 물에 있는 고기란 뜻이 됩니다. 수 많은 물고기 중 사람의 먹거리로 쓰이는 것들은 ‘생선’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한자의 뜻대로 풀면 ‘살아있는, 싱싱한’ 이라는 뜻입니다. 





물고기는 저마다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을 짓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흔한 방식은 역시 끝에 돌림자를 쓰는 것입니다. 그 중 가장 유용한 방법은 한자에서 유래한 ‘어(魚)’를 사용하는 것인데요. 붕어, 고등어, 숭어, 오징어, 문어, 농어, 장어 등 그 예는 어마어마합니다. ‘어’ 앞에 붙은 각각의 글자가 각각의 물고기를 나타내는 고유한 이름이고, ‘어’는 돌림자처럼 붙은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물고기 이름에 많이 쓰이는 돌림자는 ‘치’입니다. 멸치, 꽁치, 갈치, 날치, 가물치 등 우리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이름들입니다. ‘치’를 돌림자로 가진 생선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바로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 관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예로부터 ‘어’가 붙은 물고기를 선호해서 그런 것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를 때도 쓰이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사연을 가진 물고기들  





전어(錢魚), 참 특이한 이름을 가진 물고기입니다. 말 그대로 ‘돈고기’ 인데 전혀 ‘돈’처럼 생기지 않았습니다. 워낙 맛이 있어 사람들이 돈(錢, 돈 전)을 아끼지 않고 자주 사먹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전어야말로 스토리텔링의 결정체입니다. ‘가을 전어는 깨가 서 말’이란 허풍으로 전어의 고소한 맛을 내세우고, ‘가을 전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 오게 한다’는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어쨌든 가을만 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전어와 관련된 말들을 늘어놓곤 합니다. 그렇게 전어는 가을이면 맛봐야 할 대표 생선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전어가 이러한 영광을 누리는 걸 보면서 밴댕이는 속이 상할게 분명합니다. 아니 억울하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밴댕이 속을 누가 보았길래, 그 속을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밴댕이의 소갈머리, 혹은 소갈딱지 탓을 하고 있을까요? 밴댕이는 늘 속이 작다고 타박을 받습니다. 정말로 내장이 작아서인지, 아니면 성질이 급해 물 밖에 나오자마자 죽어서인지는 모르지만, 밴댕이는 여전히 여러모로 억울합니다. 





준치는 좀 나은 편입니다. 얼마나 맛있으면 ‘썩어도 준치’라는 표현을 쓸까요? 생김새는 밴댕이와 비슷한데 크기는 밴댕이보다는 더 큽니다. 준치의 ‘준(準)’은 뛰어나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물고기에 비해 그 맛이 뛰어나 썩어도 준치가 낫다는 식의 말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가시를 참아내며 먹어야 하지만, 준치의 깊은 맛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가시 따윈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런 것쯤은 금방 잊어버릴 만큼 맛이 일품이기 때문입니다.



자린고비의 두 얼굴 





생선 자체의 맛도 너무 좋지만,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으로 더욱 유명해진 물고기가 있습니다. 바로 굴비입니다. 한 마을에 구두쇠로 이름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자가 반찬 살 돈을 아끼려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 한번 먹고 굴비 한번 쳐다보기를 반복했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굴비가 자린고비와 엮이다 보니 자연스레 굴비에 대한 관심은 자린고비 뜻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집니다. 이 구두쇠의 본고장은 충주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이 씨 성을 가진 부자가 부모 제사에 쓰는 종이 한 장마저 기름을 먹여 재사용했다는 데서 자린고비라는 말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고비’는 한자어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뜻하고, 이 지역에서는 ‘기름을 먹인다’는 뜻으로 ‘결다’를 쓰니 ‘결은 고비’가 ‘자린고비’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굴비를 만드는 것은 참조기입니다. ‘황석어젓’의 ‘황석어’가 조기의 한자 이름입니다. 영광 법성포에서 천일염으로 간을 한 국산 참조기를 최고로 치는데, 국산 참조기가 귀하다 보니 수입 참조기를 가져다 굴비를 만들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슬픈 현실입니다. 바다에 아무리 물고기가 많다고 해도 무자비하게 낚다 보면 물고기의 씨가 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조기뿐 아니라 다른 생선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하던 명태도 잡히지 않고, 그 많던 오징어도 이제는 동해안에서 가뭄에 콩 나듯 합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최악의 경우 우리 모두 자린고비가 되어야 할지 모릅니다. 반찬 값을 아끼는 구두쇠 자린고비가 아니라, 물고기가 더 이상 잡히지 않아 그 옛날 먹었던 굴비 맛을 떠올리며 밥을 먹어야 하는 궁상맞은 자린고비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우스갯소리처럼 전해지던 굴비의 사연이 어쩌면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물에 사는 동물을 그저 물고기라 부르며 무심했던 탓은 아닐까요? 이름을 불러주는 노력을 기울이듯 물고기도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관심이 필요할 때입니다. 자린고비의 사연이 우스꽝스러운 옛 이야기로만 남을 수 있도록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