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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소식

[밥상 인문학] 새콤달콤 과일들의 이름 전쟁



원산지를 떠나 다른 나라로 귀화한 과일들은 그 나라의 특색에 맞게 저마다의 사연을 거쳐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름만으로도 앙증맞은 방울토마토부터 겉모습이 비슷하다고 하여 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키위까지, 오늘날 우리가 부르고 있는 과일 이름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예뻐서 지어진 이름, 방울토마토  


‘귀화(歸化)’는 사람과 생물에게 서로 다른 뜻으로 쓰입니다. 사람의 경우에는 다른 나라의 국적을 얻어 그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을 뜻하고, 생물의 경우에는 원산지가 아닌 지역으로 옮겨져 그곳의 기후나 땅의 조건에 적응해 번식하는 일을 뜻합니다. 





많은 과일들이 그렇듯 ‘방울토마토’는 우리나라에 ‘귀화’한 작물입니다. 방울토마토가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이것의 이름을 두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토마토’보다 크기가 훨씬 작고 귀엽게 생긴 것을 보고 영어에 익숙한 사람들은 영어의 본래 발음대로 ‘체리 토마토’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체리’가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크기가 작다고 하여 ‘미니 토마토’라고 부르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토마토의 자식 같다고 해서 ‘아기 토마토’나 ‘새끼 토마토’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불리고 있는 이름은 모두 알다시피 ‘방울토마토’입니다. 크기와 모양이 방울처럼 생겼고 발음도 둥그렇게 예쁘다고 하여 ‘방울토마토’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울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린다며 찬성했고 덕분에 ‘방울토마토’는 사전에 오르는 영광까지 누렸습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귤  





당당히 사전에 등재된 방울토마토와는 다른 묘한 운명을 지닌 과일도 있습니다. 바로 ‘귤’입니다. 한자성어 중에 ‘귤화위지(橘化爲枳)’란 말이 있습니다. ‘귤’이 변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남쪽에서 잘 자라는 귤을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되는 것처럼 사람도 주위환경이 달라지면 바뀌기 마련이라는 뜻입니다. 


이 한자성어에 나오는 ‘귤’과 ‘탱자’의 한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왠지 묘합니다. ‘귤’은 고유어일 듯한데 한자 ‘橘(귤 나무 귤)’이 버젓이 있습니다. 반면 ‘탱자’는 무조건 한자어일 것 같은데 ‘탱’의 한자를 알 길이 없습니다. ‘자’는 ‘복분자’, ‘오미자’, ‘감자’ 등에 쓰이는 ‘子’일 것 같은데 ‘탱’의 한자를 모르니 고유어로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탱자’를 뜻하는 한자 ‘枳(탱자나무 지)’가 있어 더 그렇습니다. 


‘귤’의 다른 이름으로는 ‘밀감’, ‘왜감’ 등이 있습니다. ‘왜감’은 귤이 일본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귤이 따뜻한 남쪽에서 자라는 것이니 중국보다는 일본을 포함한 남쪽에서 전해진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귤을 ‘미깡’이라고 하는 사람도 종종 있는데 ‘미깡’은 밀감의 일본어 발음입니다.



국적 불명의 이름, 자몽 





모양이나 맛이 귤과 비슷한 ‘오렌지’, ‘레몬’, ‘라임’ 등은 이 땅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이름을 갖지 못한 채 본래의 이름을 우리식 발음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습니다. 바로 ‘그레이프푸르트’ 같은 과일입니다. 


‘그레이프푸르트’ 영어로는 ‘grapefruit’로 쓰는데, 뜻만 따져보면 ‘포도 과일’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 과일의 실제 모양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포도’가 전혀 아닙니다. 포도와는 하나도 닮은 구석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중국에서는 ‘포도 유자’라는 의미의 ‘푸타오유(葡萄柚)’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우리와 일본은 다릅니다. 일본에서는 ‘자봉’이라고 부릅니다. ‘자봉’은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래 포르투갈어에서 바뀌긴 했지만 ‘자봉’이란 이름이 과일과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자봉’에서 ‘자몽’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자봉’이 한자어인지 아니면 서양에서 들어온 말인지 헷갈려서 바뀌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면 비슷하게 생긴 ‘레몬’을 보고 ‘레몬’의 ‘몬’을 따서 ‘자몽’으로 바꾼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자몽’이 국정 불명의 이름이다 보니 본래 영어 이름대로 ‘그레이프푸르트’라고 쓸 것을 권유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자몽’이라는 이름의 과일이 더 상큼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날지 못하는 키위가 있다 


겉은 거무튀튀한 색깔에 생김새는 별로지만, 껍질을 까면 영롱한 초록빛 알맹이를 드러내는 과일이 있습니다. 한입 베어 물면 까만 씨가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과 새콤한 맛이 일품인 ‘키위’입니다. 이런 ‘키위’의 이름에 재미난 사연이 숨어있습니다. 





‘키위’는 사실 과일의 이름으로 불리기 전, 뉴질랜드에 서식하는 ‘날지 못하는 새’의 이름입니다. 어쩌다 새의 이름이 과일의 이름이 된 것일까요? 


키위의 원산지는 바로 중국의 양쯔강 유역입니다. 중국에서는 키위를 태양의 복숭아라는 뜻의 ‘양타오’라고 부르며 즐겨 먹었는데, 20세기 초에 뉴질랜드로 전해져 오늘날과 같이 개량된 것입니다. 





중국의 과일 ‘양타오’는 뉴질랜드로 건너가게 되면서 양타오의 겉을 덮고 있는 털이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동물인 새, 키위의 털과 비슷해 ‘키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이름이 우리 땅에도 넘어오면서 그대로 ‘키위’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중국이 원산지고 뉴질랜드에서 개량된 역사를 가진 키위처럼 우리는 오늘날 지구 곳곳에서 전해진 다양한 과일들을 손쉽게 먹고 있습니다. 우리 땅에서 재배된 토종 과일이건, 우리나라로 귀화한 과일이건 우리는 그저 새콤달콤 제철에 맞는 과일을 맛있게 먹고 즐기면 되는 것 같습니다.





과일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나니 왠지 과일의 맛이 조금은 색다르게 느껴집니다. 키위를 먹으며 새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조금 우스꽝스럽기도 한데요. 과일의 이름이 어디서 어떻게 전해졌던지 여전히 상큼하고 달콤해 먹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