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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소식

[밥상 인문학] 술이 만들어 낸 예술



“술은 처음 마시기 시작할 때는 양처럼 온순하고,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워지고, 조금 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추고 노래를 부르며, 더 많이 마시면 토하고 뒹굴고 하면서 돼지처럼 추해진다. 이것은 악마가 인간에게 준 선물이었다.” 


이것은 탈무드에 나오는 술의 기원입니다. 술을 악마가 준 선물에 비유하며 스스로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시사하는데요. 애주가였던 예술가들은 술을 마시고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금주법도 막지 못한 잭슨 폴록의 술사랑 





금주법이 시행됐던 당시 상황에도 불구하고 잭슨 폴록은 매일같이 술을 상자 채 옆구리에 끼고 살았습니다. 만취한 채로 툭하면 행인에게 시비를 걸고, 주먹질을 일삼았습니다. 급기야는 가족이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정도였습니다. 누구도 폴록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폴록이 화가의 길에 접어들게 된 것은 고등학생 시절 유일하게 미술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폴록의 옆에서 그를 이끌어준 크래스너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뛰어난 감각을 지닌 화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폴록이 가진 예술적 잠재력을 펼칠 수 있도록 자신의 꿈 대신 폴록을 내조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작업환경은 물론 식사, 청소, 작품홍보까지 폴록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폴록은 크래스너의 지원을 받으면서 폭음을 멀리하고, 화가로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940년대에 뉴욕화단은 피카소의 작품이 장악했고, 피카소의 공습은 폴록에게 치명상을 남겼습니다. 폴록은 더 이상의 새로운 시도는 불가능하며, 피카소를 뛰어넘을 예술가는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움에 대한 갈증으로 몇 날 며칠째 캔버스 앞에서 고민하던 폴록은 망설이는 붓끝에서 흘러내리는 물감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번져가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폴록은 곧바로 물감을 캔버스에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점과 선이 엉키면서 거대한 선들은 코튼 천에 스미고 번지며 마치 그림이 살아 숨 쉬듯 일렁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폴록은 ‘드리핑’이라는 극단적인 기법을 개발했고, 이것은 후에 폴록의 전형적인 작품의 한 형태인 ‘액션페인팅’이 되었습니다. 커다란 마룻바닥에 천을 깔아놓고 그 위를 걸어 다니며 물감을 흘리는 독특한 방법이 세계 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1949년 8월 <라이프>지에 기사가 실리면서 대중에게 관심 받는 화가로 급부상했습니다. 


하지만 폴록의 인생은 술과 함께 얼룩져 갔습니다. 폴록은 평생 알코올의존증의 딱지를 떼지 못했습니다. 술은 자학의 수단이자 우울증에 대한 스스로의 처방이었습니다. 그는 술에 의존하면서 광기에 휩싸여 죽음에 대한 충동을 느끼곤 했습니다. 


1956년 8월 어느 날, 폴록은 만취한 상태에서 과속 운전을 하다가 길가의 자작나무를 들이받고 즉사했습니다. 술 때문에 44세의 나이에 요절한 것입니다. 그의 파란만장하고 굴곡졌던 예술 생활은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언제나 고주망태였던 위트릴로 


위트릴로는 어린 나이에 이미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그는 매일 밤 술을 마셨습니다. 적당히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한번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정신을 놓을 때까지 마셨습니다. “술집에 가면 언제나 고주망태가 되어 있는 위트릴로를 만날 수 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위트릴로가 살았던 1890년대 몽마르트르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이었습니다. 위트릴로는 사생아, 불안정한 가정, 불투명한 미래 등에서 오는 두려움과 좌절을 잊기 위한 몸부림으로 항상 술을 마셨습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10살 때부터 습관처럼 술과 함께 했습니다. 


술로 사는 날들이 쌓이면서 병원 신세를 지는 횟수도 늘었습니다. 20살이 채 되기도 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열 번 정도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때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그림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활동하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스승으로 삼아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는 집과 길이 있는 거리를 즐겨 그렸는데 묘사된 풍경을 보면 삶의 모습을 마주한 느낌이 듭니다. 병든 몸처럼 핏기 없는 회색 벽, 누구에게도 쉽게 열지 못하는 마음처럼 굳게 닫힌 창, 목적지가 불투명해 보이는 쓸쓸한 행인의 뒷모습, 거기에 끝이 분명해 보이지 않은 골목길 등 당시 그가 바라보는 몽마르트르의 분위기가 화면에 가득합니다. 


백색시대로 일컫는 1907~1914년 동안 위트릴로는 삶의 체험적 공간을 화폭에 옮기며 생애 최고의 작품들을 쏟아냈습니다. 생동감 넘치는 밝은 색채가 주를 이루던 인상파 작품들과는 또 다른 프랑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위트릴로의 말년은 행복했습니다. 술을 끊으면서 건강을 회복하고, 화가로서 명예도 얻었습니다. 여기에는 그의 작품을 아끼고 정신적 안정을 갖게 해준 루시 포웰이라는 여인의 힘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녀는 위트릴로 작품의 애호가였습니다. 부유한 미망인이었던 그녀는 깊은 신앙심과 사랑으로 위트릴로가 물질적 풍요와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위트릴로는 술로 보낸 젊은 날의 파행을 후회하고 뉘우치면서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한 여생을 살다가 1955년 7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언제나 술과 함께였던 두 화가의 삶에서 술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잭슨 폴록에게 술은 부정적인 존재였고, 말년에 행복했던 위트릴로는 술의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일까요? 언뜻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두 화가에게는 아이러니한 사실이 있습니다. 


술로 인생을 잃은 폴록은 사후에 미국 현대미술의 선구자이자 미술 시장의 최고가를 경신하는 작가로 급부상했고, 위트릴로는 음주벽이 사라지면서 작품의 긴장감도 함께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잭슨 폴록과 위트릴로의 인생이 서로 다른 최후를 맞게 된 것이 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술은 항상 적당히 즐겨야 후회가 없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