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 연재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건축물 <슈테판 대성당 vs 투르쿠 성>



중세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제2차 세계대전의 아픔을 공유한 건축물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슈테판 대성당’과 핀란드의 ‘투르쿠 성’입니다. 두 건축물은 전쟁의 아픔을 딛고 어떻게 오늘날 역사적 상징으로 거듭날 수 있었는지 소개합니다.



오스트리아 역사적 사건의 산 증인, 슈테판 대성당 


옛 건물이 가득 들어찬 구시가지의 중심부에 있는 슈테판 대성당은 ‘빈의 혼’이라고 불리며 오스트리아 빈의 상징으로 꼽힙니다. 12세기 중엽 로마네스크 양식의 작은 교회가 건설된 것이 시초이고, 14세기 루돌프 4세가 고딕 양식의 대교회로 다시 지어 지금의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양식 건물이 되었습니다. 



▲ 청색·금색 벽돌로 만든 화려한 모자이크 지붕



총 8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슈테판 대성당은 공사 기간만 65년이 걸렸습니다. 건물의 길이가 107m, 천정 높이가 39m에 이르는 거대한 사원으로, 높이 137m에 달하는 첨탑과 25만 개의 청색·금색 벽돌로 만든 화려한 모자이크 지붕이 눈에 띕니다. 다양한 색상으로 꾸며진 지붕 타일 덕분에 빈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 슈테판 대성당 첨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조망



교회 북측 탑은 엘리베이터로 올라갈 수 있고, 남측 탑은 계단을 따라 올라갈 수 있습니다. 남측 탑은 높이가 137m에 달합니다. 계단 343개를 따라 남측 탑의 꼭대기에 올라가면 슈테판 대성당의 아름다운 지붕과 빈 시내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 슈테판 대성당 북측 탑에 위치한 종



북측 탑에는 1711년에 오스만 투르크인이 두고 간 수백 개의 대포를 녹여 만든 종이 있습니다. 현재 볼 수 있는 모습은 1957년에 제작한 것인데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종입니다. 건물 내부에는 16세기에 만든 석조 부조의 설교대와 15세기 말에 만들어진 대리석 석관이 있습니다. 그밖에 마리아와 예수상이 있고,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 매우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으로 이루어진 내부



슈테판 대성당은 오스트리아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마다 산 증인의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1782년에는 모차르트의 결혼식이 있었고, 1791년에는 모차르트의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매년 12월 31일 빈 시민은 슈테판 대성당 앞 광장에 모여 새해를 맞이합니다. 


또한, 많은 전쟁으로 몸살을 앓기도 했습니다. 1263년 일어난 대화재로 성당 일부가 소실되었고 연이은 오스만제국,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아픔을 겪었습니다. 원래는 로마네스크 양식이었지만 화재 이후 고딕과 바로크, 로코코 양식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재건되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또 한 번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시민들은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화재 진압에 나섰고, 성금을 모아 슈테판 대성당을 재건하는 데에 힘썼습니다. 그 결과 단 7년 만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 8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슈테판 대성당



빈 시민들이 고난 속에서도 지켜내고자 했던 마음이 깃들어서인지 슈테판 대성당은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슈테판 대성당은 지금도 보수 작업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이 성당은 800년의 역사를 넘어 900년, 1000년의 역사로 이어질 것입니다.



▲ 스칸디나비아 반도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인 투르쿠 성



핀란드의 국보급 역사적 기념물, 투르크 성  


투르쿠 성은 핀란드 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스칸디나비아 반도 내에서도 가장 오래된 건물 중의 하나로 손꼽힙니다. 보통의 성들과는 달리 화려하지도, 크지도 않습니다. 회색 돌로 지어진 단아한 모습에 핀란드의 맑은 자연과 어울려 소박한 멋을 풍깁니다. 


최초 건립 연대는 12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핀란드를 통치하던 스웨덴이 세운 후 국왕의 거처로 이용되었습니다. 그 후 여러 시대에 걸쳐 확장과 증축을 반복하면서 이어져 왔는데 처음 성곽의 형태는 돌벽과 두 개의 전망탑이 있는 구조였습니다. 나중에 아우라 강의 물길을 끌어온 커다란 해자(성벽 주변에 인공으로 땅을 파서 고랑을 내거나 자연하천을 이용하여 적의 접근을 막는 성곽시설)를 지었으며, 이로 인해 성은 섬 위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16세기에는 오늘날 모습인 르네상스 건물로 개조되었습니다. 몇 세기에 걸쳐 그 규모는 더욱 웅장해졌고, 방어력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이때가 성의 전성기였습니다. 



▲ 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투르쿠 성



투르쿠 성 내부로 들어가면 높은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로 된 장식, 그리고 선명한 음색을 자랑하는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핀란드 여성으로서 처음 스웨덴 왕비가 된 카타리나의 석고상과 30년 전쟁 영웅들의 무덤도 볼 수 있습니다. 입구에는 핀란드 종교개혁을 이끌고 초대 핀란드 루터교회 대주교를 지낸 미카엘 아그리콜라의 두상이 자리합니다.


투르쿠 성은 모든 핀란드 성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사건 속에 자리했습니다. 비보르크 성과의 전투 등 수많은 전투가 이 부근에서 일어났고, 화재로 몇 차례 불타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의 비행기는 투르쿠 성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고 성은 또 다시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그 후 오랜 기간에 걸쳐 전면적으로 개조 작업이 진행되었고 198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끝이 났습니다.



▲ 핀란드의 맑은 자연과 어울려 소박한 멋을 풍기는 투르쿠 성



오늘날 투르쿠 성은 풍부한 역사와 여러 차례의 공격을 보여주는 대규모 전시물이 소장된 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전시되어 있는 물품들은 투르쿠와 핀란드의 역사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과거 수세기 동안의 의상, 생활풍습, 건물 내부 장식 양식을 보여줍니다. 지금도 핀란드 남서부 지방의 대표적인 유적이며 핀란드 전체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으로 핀란드의 가장 중요한 국보급 역사적 기념물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슈테판 대성당과 핀란드 투르쿠 성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숱한 위기를 겪은 만큼 가치가 큽니다. 교과서로만 배울 수 있던 격동의 역사가 가진 진짜 숨결을 두 건축물을 통해 잠시나마 느낄 수 있으니 말이죠.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곳곳에 역사의 굳은살이 생겨 더욱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