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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밥상 인문학] 중독성 있는 매운맛 <辛바람>



요즘은 땀을 뻘뻘 흘리며 매운 음식을 먹는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데, 도대체 왜 매운 음식을 찾는 걸까요? 좀처럼 끊을 수 없는 중독, ‘매운맛’에 대해 소개합니다.



스트레스 타파! 매운맛의 중독성 





스트레스가 팍팍 쌓이는 느낌이 들 때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줄 무언가를 떠올리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것은 매운 음식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매운 것을 먹다 보면 저절로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습니다. 입에서 불이 나고 혀가 얼얼한 자극적인 맛에도 불구하고 연신 손이 가는 것을 보면 매운맛은 중독성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매운 음식을 먹으면 뇌에서 매운맛을 없애기 위한 반작용으로 엔도르핀을 분비합니다. 엔도르핀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데, 여기서 느끼는 기분은 쾌감입니다. 그리고 쾌감은 곧 중독을 뜻합니다. 





고추 안에 들어있는 캡사이신은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면서 뭉쳐있던 기운을 풀어주는 작용을 합니다. 기분이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매운 음식을 찾는 것은 이러한 반복된 학습에 따른 것입니다. 


또한, 인간은 위험을 즐기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공포 영화를 보고 스카이다이빙을 하듯이 말입니다. 매운맛을 추구하는 모습도 ‘위험 추구’의 한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매운맛으로부터 오는 고통이나 짜릿함을 즐기고 매운 음식을 다 먹은 후에는 일종의 성취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칠 줄 모르는 辛바람 열풍 





외식업이 전반적인 불황이라고 하지만 유독 매운 음식은 그 화끈한 맛만큼이나 열풍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운 떡볶이를 비롯해 불닭, 불낙지, 불삼겹, 빨간어묵, 매운라면 등이 성황이며, 심지어 노점상에서도 매운 음식이 인기입니다. 이름하여 ‘눈물꼬치’가 그것입니다. 닭고기에 알싸한 양념소스를 바른 눈물꼬치를 한입 물면 눈물은 물론 코끝까지 저릿해집니다. 





매운맛의 대명사인 고추장도 업체별로 더 맵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과업체들도 매운맛을 첨가한 제품을 앞다투어 쏟아내고 나아가 외국계 외식업체까지 매운맛 메뉴로 불황 타개를 꾀하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인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와 서양에서 매운 음식들이 트렌드를 주도합니다. 음식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정통적인 조리 방식으로 요리했던 예전과 달리 강한 향신료와 매운 양념을 적극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매운 음식, 사회·경제적 해소책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 정치적 무기력감 등 가라앉은 사회 분위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자극적이고 매운 음식을 찾게 한다고 말합니다. 요즘처럼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어수선하고 답답할 때 사람들은 매운 음식을 먹음으로써 화끈한 쾌감을 체험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매운 음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심리 치료제이며 위안을 주는 친구이기도 합니다. 


한방에서는 맛이 사람들의 육체나 정신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고 말합니다. 특히, 매운맛은 슬픈 감정을 나타내며 짠맛은 놀람·불안의 감정과 연관 있는 것으로 봅니다. 즉 경제가 불안하고 고용이 불안정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감정은 불안하고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매운 음식은 이런 우울감을 떨쳐버릴 수 있는 해소책이 됩니다.





매운맛에 의존하는 것은 사회문화적 상황과도 연관성이 있습니다. 가령 한국이 세계적인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을 매운맛이 이루어냈다고 보는 것입니다. 노동에 힘든 몸을 매운맛으로 잊고 쌓인 스트레스도 매운맛으로 털어버리려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산업화·도시화로 인해 빨리빨리 움직여야 하는 일상을 보내는 한국인들에게 매운 음식은 힘을 발휘하게 하는 원천이었습니다. 지금도 한국인들은 여전히 바쁘고, 빨리 먹고 힘내서 일해야 합니다. 사회는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빠르게 흘러갑니다. 웬만한 충격에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며 살다 보니 자연히 강하고 자극적인 음식에 점점 더 빠져들 수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한국인은 역시 매운맛’이라는 말이 있죠. 어쩌면 우리는 화끈한 매운맛에 길들여진 덕분에 무엇이든지 시원스럽게 빨리 처리하고 굴곡진 역사를 지나오면서도 꿋꿋하게 인내할 수 있었지 모릅니다. 매운맛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상징입니다. 오늘 저녁 칼칼하고 시원한 매운 음식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