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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대자연의 품속에서 신을 만나다 <그리스 메테오라 vs 스페인 몬세라트>



수도원은 수도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오로지 수도생활만 하는 목적으로 지어졌습니다. 즉, 수도원은 수도자들이 신과 만날 수 있는 장소인 셈입니다. 하지만 수도원 역시 외부의 침입을 피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이를 피하고자 수도자들은 접근이 힘든 험난한 산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수도원을 짓고 공동체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수도자들은 기도하고 학문을 쌓고 일하며 맑은 영혼으로 신을 만나기 위해 평생을 헌신합니다. 수도원은 성지라는 일반적인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신이 만들어낸 걸작 중의 걸작으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동떨어져 신을 만나는 곳, '메테오라(Meteora)' 



▲ 신과 가장 가까워지는 곳, 그리스 메테오라



신들의 나라인 그리스의 북쪽 테살리아 지방에는 신과 가장 가까운 수도원이 있습니다. 접근하기 어려운 사암(sandstone) 봉우리로 이루어져 ‘하늘의 기둥(columns of the sky)’ 이라고 불리는 지역입니다. 그리스어로는 ‘공중에 떠 있다’라는 뜻을 가진 메테오라라고 불립니다. 메테오라의 사암 봉우리 높이는 약 300m로 기묘한 바위들은 제우스가 하늘에서 던진 암석이라고 전해집니다.


메테오라는 11세기에 수도자들이 정착하면서 마을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곳입니다. 핀투스 산맥 바위 절벽 위에 모여 있는 메테오라에서 수도자들은 천국을 바라보며 속세와 단절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정치가 상당히 불안했던 14세기에 수도원들은 무법자가 오지 못하도록 접근하기 어려운 봉우리 위에 조직적으로 건축되었습니다. 사다리, 바구니, 도르래 등을 동원해 꼭대기에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 때문인지 수도원에서는 그리스 문화와 전통적인 생활방식은 물론 수도원 공동체의 모습도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단순히 수도원의 기능으로만 국한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예술이 꽃을 피웠습니다. 일례로 크레타 섬 출신의 테오파네스(Theophanes)가 1527년에 제작한 이곳의 프레스코화들은 도상학(Iconography; 작품의 의미나 모티브를 다루는 미술사의 한 분야)의 참고 자료로 오랫동안 영향을 끼쳤습니다.



▲ 예술과 종교가 어우러져 있는 수도원 내부



15세기 말에는 수도원의 수가 24개에 달했습니다. 수도원은 17세기까지 계속 번성했지만, 18세기 말 불안정한 지반 때문에 대부분이 무너졌습니다. 현재는 다섯 개의 수도원과 한 개의 수녀원만이 남아 있습니다. 


프레스코 풍의 성화가 있는 ‘아기오스 니콜라오스(Agios Nikolaos)’와 종종 세계 10대 불가사의 건축물로 꼽히는 ‘발람(Varlaam)’, 최초의 수도원이자 규모가 가장 큰 ‘메갈로 메테오론(Megalo Meteoron)’과 영화 007 시리즈에 등장한 ‘아기아 트리아다(Agia Triada)’, 수녀들의 수도원인 ‘루사누(Roussanou)’, 그리고 수녀원인 ‘아기오스 스테파노스(Agios Stephanos)’만이 남아있습니다.


수도원 설계의 중심은 안뜰을 열주(列柱)로 둘러싼 회랑(回廊) 건축입니다. 한 편은 성당에 접하게 하고 다른 세 편에 식당·주방·집회실·공동 작업실 등을 배치하고, 그 위층에 수도실·침실·객실 등을 설치하게 되어 있습니다. 


메테오라의 수도원들은 예술 작품일 뿐만 아니라, 어떤 장소를 수행, 명상, 기도의 장소로 만든 건축적 변형 중 가장 독특한 사례라고 합니다. 또한 메테오라는 뛰어난 건축 양식을 자랑합니다. 이 점을 인정받아 메테오라는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하늘과 맞닿을 듯, 땅 위에 솟은 듯,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메테오라는 금방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여도 지금까지 굳건히 버텨 왔습니다. 뿌연 안개가 바위 절벽을 휘감는 메테오라의 새벽녘 풍경은 몽환적이고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험한 산세와 수많은 가파른 계단을 지나면 성스러운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 수도원의 품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품 안에서 우리는 수도원의 신성함은 물론 아름다운 종교 미술, 프레스코, 모자이크, 회화 등을 통해 수도자로서의 삶에 대한 헌신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바위산처럼 단단해지고자 한 수도사들의 영토, '몬세라트(Montserrat)' 



▲ 믿음을 얻고자 하는 전 세계 순례자들이 찾는 몬세라트



‘톱니 모양의 산’을 뜻하는 몬세라트는 해발 1,300m에 있는 거대한 바위산입니다. 울퉁불퉁한 봉우리들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는데, 멀리서 보면 날카로운 톱니바퀴처럼 보입니다. 몬세라트는 연한 색의 역암질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 서서 바르셀로나 뒤로 펼쳐진 평원을 압도하듯 굽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위로 뒤덮인 기암절벽 정상엔 수도원인 ‘산타마리아 데 몬세라트’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지금은 케이블카와 산악 열차를 이용해 들어갈 수 있지만, 거대한 돌 위에 지어진 몬세라트는 어떻게 이곳을 지었으며 어떻게 사람들이 오르내렸는지 알 수 없는 굉장히 미스테리한 장소로 손꼽힙니다. 게다가 높은 곳에 꼭꼭 숨어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전쟁을 이겨내어 보존 상태도 좋습니다. 


이 때문에 빼어난 절경은 물론 역사 깊은 수도원을 보고자 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도 몬세라트에 반한 순례자 중 한 명입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종종 이곳에 들러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몬세라트의 산봉우리의 영감을 받아 역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건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 예수와 12제자를 뜻하는 조각들



스페인 3대 순례지 중 하나인 몬세라트는 1205년에 작은 규모의 베네딕트 수도원을 세운 것이 시초였습니다. 허물어지지 않을 신앙의 산을 쌓고자 하는 수도자들이 가깝고 먼 곳으로부터 모여들었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바위처럼 단단해지고자 원하는 수도자들이 바위굴에 들어가 자신을 닦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수도자들이 많아져 15세기에는 대 수도원으로 발전했었으나 19세기 초에 나폴레옹 군에 의해 파괴, 19세기 중 경부터 재건되었습니다.


수도원 입구 쪽 벽에는 수비라치가 만든 조각상이 안치되어 있어 눈길을 끕니다. 수비라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수난의 파사드를 설계한 사람입니다. 몬세라트 입구의 천국의 계단도 그의 작품입니다.


입구를 지나 넓은 마당이 있는 건물 안쪽에 들어오면 장엄하고 아름다운 ‘바실리카 대성당’을 볼 수 있습니다. 건물 앞면은 섬세하고 복잡하며 기교적인 플래터레스크(Plateresque)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이 양식은 16세기 에스파냐 건축물에 사용된 것으로, 후기 고딕 양식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과 무어인들의 이슬람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건축 양식입니다.


성당 내부는 미켈란젤로와 이탈리아 작가들의 작품 등 온통 벽화와 조각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몬세라트의 상징물인 검은 마리아상 ‘라 모레네타(La Moreneta)’를 만날 수 있습니다. 검은 마리아상은 바르셀로나가 속한 카탈루냐 지방의 수호 성모로, 이 지방을 대표하는 상징입니다. 



▲ 검은 마리아상 라 모레네타(La Moreneta)



마리아상의 오른손을 잡고 기도하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알려져 마리아상을 보려는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몬세라트에서는 목재로 만들어진 마리아상을 보호하기 위해 주위에 유리벽을 둘러 세웠습니다. 손 위의 지구를 상징하는 구슬 부분이 뚫려 있어 그곳을 잡고 기도를 하도록 했습니다. 


단조롭고 평범한 느낌이 강한 수도원의 외형은 병풍처럼 둘러싼 산세와 기암절벽을 뒤로하면 더욱 돋보입니다. 대자연의 품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간 덕분입니다. 우리 역시 몬세라트와 어우러지는 대자연을 바라보고 있자면, 단순함 속에서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몬세라트의 수도자들이 그리고 가우디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수도원은 기독교를 부흥시킨 종교적 중심지였습니다. 건축의 측면에서는 많은 수의 수도원 교회와 성당을 축조함으로써 새로운 실험을 할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신과 오롯이 만나기 위해 수도자들은 자연을 선택했고, 그곳에서 자신들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 가파른 절벽 위 성스러운 수도원의 모습



신을 향한 염원 하나로 사람의 발길이 닿기도 힘든 수도원에서 세월을 보내는 수도자들의 모습에서 진짜 헌신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그러한 수도자들의 절대적 믿음에 답하듯 자연 속 수도원의 성스러운 아름다움은 수도자들의 헌신에 답을 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