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케첩과 칵테일에는 중국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케첩은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져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과 칵테일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케첩과 칵테일의 이야기를 통해 그 속에 숨겨진 세계 경제사를 소개합니다.



중국의 생선 소스, 케첩 





패스트 푸드의 대명사인 햄버거, 프렌치 프라이의 단짝은 바로 케첩입니다. 왠지 미국에서 탄생했을 것만 같은 이 세 음식은 놀랍게도 다른 나라에서 유래했습니다. 특히 케첩은 서양의 다른 나라도 아닌 동양의 ‘중국’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중국 푸젠성에서 만든 생선 소스가 그 시초이며, ‘케첩’이라는 단어 자체도 푸젠성 방언으로 ‘저장된 생선 소스’를 의미합니다.


오늘날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케첩’의 역사는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무렵 현재 중국 남부에 속하는 동남아시아의 해안과 강변에 살던 사람들은 현지에서 잡은 생선과 새우를 소금에 절인 후 발효시켜 진한 맛이 나는 페이스트를 만들어 저장했습니다. 


그보다 더 남쪽 지역에 살던 몽크메르족과 타이족은 건기에 대비해 민물고기를 쌀밥, 소금과 켜켜이 쌓아 항아리에 넣고 댓잎을 함께 넣어 발효시켰습니다. 발효 후 끈적해진 쌀밥을 걷어내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염장생선이 됐습니다. 5세기 경의 중국 역사가들은 이 조리법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기원전 200년, 한무제는 새롭게 통일된 중국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오늘날 푸젠성과 몽크메르족, 타이족이 사는 땅을 침략했습니다. 고대 중국 자료에 따르면 중국인들이 생선 소스를 받아들인 시기가 바로 이때입니다. 


중국의 군사와 식민지 건설자들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주변국으로 쫓겨났습니다. 하지만 일부는 남아 자신들의 토산물인 생선과 새우 젓갈 등을 계속 만들었으며 얼마 후 이 음식들은 중국 전역에 널리 퍼졌습니다. 


이후 그 지역에서는 발효된 콩 반죽을 만들고, 술을 만들고 남은 지게미와 간장을 섞어 된장을 만들었으며, 이웃나라로도 퍼져 양념과 저장용 재료로 활용됐습니다. 이렇게 생선 소스의 발원지로 이름난 푸젠성 지역은 1200년경에 고대 해양 실크로드의 관문으로서 중국 해상활동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리고 중국의 생선 소스는 대항해 시대를 거쳐 미국과 영국으로 건너갑니다. 당시 케첩이 고급 식품으로 여겨져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자 미국과 영국은 나름의 조리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에서는 기존 케첩의 주재료인 생선을 빼고 앤초비에 버섯과 호두를 넣었으며, 미국에서는 엔초비를 빼고 토마토를 넣어 케첩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1910년경에 식품기업 ‘하인즈’와 같은 제조회사가 케첩의 저장성을 높이기 위해 설탕과 식초를 첨가했고, 지금의 새콤달콤한 토마토 케첩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칵테일의 시초가 된 증류주 '아락' 





오늘날의 케첩이 탄생하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한 생선 소스의 원산지 푸젠성에는 또 하나 유명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또 다른 고대식 발효 소스인 발효된 붉은 쌀과 이를 술로 담근 붉은 쌀술 홍주입니다. 


활발한 무역으로 해외에 진출한 화교들은 자바와 수마트라에 공장을 지어 새로운 증류주를 개발했습니다. 발효된 홍주에 당밀과 종려술을 함께 섞은 후 전통방식으로 증류한 럼주의 고대 선조격이라 할 수 있는 아락(arrack)입니다.





그 무렵 영국에서는 의료용 외에 마시는 증류주가 생소할 때였습니다. 당시 영국인 교역자 에드먼드 스콧은 아락을 두고 ‘그쪽 세계에서 와인 대신 쓰이는 독한 술의 일종’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증류주인 아락은 영국인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와인이나 맥주와 달리 열대의 뜨거운 열에도 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머지 않아 영국인들은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아락을 사재기했는데, 특히 영국인 선원들과 해군이 아락을 좋아했습니다. 


1610년경, 칵테일 역사가 데이비드 원드리치는 아락을 ‘혼합음료의 시초’로 지칭했고, 아락을 물과 설탕, 감귤류, 향신료등과 섞어 최초의 칵테일인 펀치를 만들었습니다.



세계 경제를 뒤흔든 중국의 영향력 





미국의 국민 소스인 케첩의 시초가 중국이라는 것은 단순한 요리의 역사를 넘어 세계의 경제사를 다시 보게 만듭니다. 영국 선원들이 케첩을 들여온 17세기 후반에 중국은 1인당 소득, 생활수준, 평균 수명 등이 세계 평균치를 넘어선 부유한 나라였습니다. 


아시아 내 교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과 직물, 도자기, 증류법 등 뛰어난 제조기술을 보면 산업혁명 이전까지 세계 경제를 지배한 것은 중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유럽은 1800년까지 아시아에 견줄만한 제조기지가 없었습니다. 유럽이 아시아의 사치품을 구매하기 위해 내놓을 수 있었던 건 멕시코, 페루 등 새 식민지의 광산에서 나는 금과 은이 전부였습니다. 





중국 정부는 물건값으로 은만 취급하였고, 에스파냐의 8레알짜리 페소 은화는 지금의 달러 같은 역할을 한 최초의 국제통화가 되었습니다. 유럽인들은 아시아에서 만든 고급 비단과 도자기, 아락, 케첩을 사기 위해 엄청난 양의 페소 은화를 가져왔습니다. 


역사학자 찰스 만은 저서 <1493>을 통해 유럽이 신세계를 무자비하게 식민지화하고 수탈한 이유가 아시아 수출품의 대한 유럽의 욕망 그리고 은을 향한 중국인들의 욕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케첩과 칵테일의 시초가 중국이다’라는 사실이 전부가 아닙니다. 케첩과 칵테일의 역사는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중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져나간 케첩과 칵테일의 역사도 중국이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저력 중 하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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