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기간에도 음식문화는 계속해서 발전합니다. 지금 우리의 식탁 위에 놓여있는 음식들도 여러 곳의 전쟁을 거쳐 현재의 식탁으로 올라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은 전쟁 중에 탄생한 음식인 만두와, 전쟁의 발단이었던 설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만두, 대륙 원정길에 함께 오르다


밀가루 피에 채소, 고기, 김치, 두부, 당면 등 갖가지 재료를 넣은 소를 넣어 빚는 만두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별미 중 하나입니다. 만두는 동양과 서양 문화권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음식입니다.





만두의 기원은 <삼국지>의 제갈공명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남만을 정복하고 촉나라로 돌아가던 제갈공명은 비바람으로 범람한 루수히 강 앞에서 발이 묶였습니다. 강을 건너기 위해 심복 맹획에게 방법을 물으니, “강물과 바람이 거셀 때 이 지방에서는 사람의 머리 마흔 아홉 개를 제물로 바친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이에 제갈공명은 꾀를 내어 커다란 밀가루 피에 소고기와 양고기로 속을 채운 커다란 음식을 강물에 던졌습니다. 이것이 만두의 시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충렬왕 때 처음으로 만두가 등장합니다. 고려가요 <쌍화점>에 나오는 밀가루 안에 고기로 소를 넣은 음식인 쌍화(雙化)가 바로 그것입니다.





서양에서도 만두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만두가 등장한 고려 무렵, 유럽에 펠메니(Pelmeni)가 등장했습니다. 펠메니는 러시아, 벨로루시, 라트비아,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즐겨먹던 음식으로, 지역에 따라 돼지고기, 소고기, 양고기, 생선 등을 소로 넣었습니다. 펠메니는 당시 러시아를 지배하던 몽골인들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음식으로 추측되는데요. 13세기 몽골인들이 중국을 정복하면서 만두를 접했고, 이후 러시아 지역으로 뻗어나가면서 펠메니가 생겨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후 만두는 몽골군의 원정길에 함께 오르며 유럽, 터키, 중동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폴란드식 만두 피에로기, 이탈리아의 라비올리, 터키와 아프가니스탄, 아르메니아의 만티, 그루지야의 킨칼리, 우즈베키스탄의 추츠바라 등 여러 모양의 만두가 생겨났습니다.





설탕, 해상무역을 장악한 달달한 맛


달콤한 맛을 내는 설탕. 설탕을 처음 세계 무대에 등장시킨 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전쟁 당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3세가 이끄는 대군을 완파하고 인도까지 진군했습니다. 인더스 강 유역에 다다른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원주민들의 음식에서 특이한 것을 발견합니다. 바로 사탕수수를 끓여 갈색의 가루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이것을 먹어보고 “벌 없이도 꿀을 얻을 수 있다니!”라며 크게 놀랐습니다. 설탕이 세계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설탕이 전성기에 오르게 된 것은 로마가 동서로 분열되고 약 300년 후, 이슬람이 지중해를 지배하기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입니다. 아랍인들은 설탕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사탕수수가 재배될 수 있는 지역에는 설탕 공장이 세워졌습니다. 로마인들처럼 아랍인들에게도 설탕은 부의 상징이었는데요. 이집트 술탄은 궁전 앞에 설탕으로 야자나무 모형을 만들기도 했고, 환심을 사기 위해 설탕 과자를 정복자에게 바치기도 했습니다.





‘설탕 사랑’이라면 영국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해상 강국으로 떠오른 영국은 서인도제도의 섬 자메이카를 점령해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세웠습니다. 특히 차 문화가 유럽 곳곳에 퍼지면서 차의 감미료로 설탕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요. 초콜릿, 잼에도 설탕이 재료로 사용되면서 국제 무역에서 설탕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탕무’를 통해 설탕을 추출하는 방식이 발견되면서부터 설탕 무역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영국의 지위가 하락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영국과의 대결에서, 나폴레옹이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륙봉쇄권’으로 영국과의 교역을 막자 영국은 설탕을 유럽에 팔지 않겠다고 대응했습니다. 


그러자 차, 초콜릿, 잼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게 된 유럽 전역의 많은 사람들이 이에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이에 나폴레옹은 사탕무 재배 농장주들과 농부들에게 세금을 면제해주는 법안을 만들어 불만을 잠재우고자 했는데요. 나폴레옹 몰락 이후에도 사탕무 재배가 계속되어 유럽에서는 사탕무에서 추출한 설탕이 더 많이 쓰이게 되었습니다.





현대 경제에서도 설탕의 가격에 따라 시장경제가 출렁이곤 합니다. 세계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그 존재감을 뽐내는 과시하는 설탕을 ‘그깟 조미료’로 치부하기에는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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