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 연재

시카고학파의 시초 ‘루이스 헨리 설리번’, 미국의 스카이라인을 수놓다

안녕하세요, 신도리코 신대리입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19세기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헨리 설리번’의 말입니다. 일부 근대주의 건축가들은 그의 말을 건축물 자체의 기능으로 이해했지만 그는 ‘건축의 사회적 기능’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 시대 미국 사회와의 유기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설리번의 건축을 보면 그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죠. 시카고학파의 시초이자 미국의 스카이라인을 수놓은 설리번의 건축 세계를 단국대학교 건축학과 강태웅 교수님의 이야기로 만나보겠습니다.






현대 마천루의 아버지


설리번은 미국 근대건축의 중심에 서 있던 건축가이자 상업주의 건축을 추구한 시카고학파의 핵심적 인물입니다. 그는 헨리 홉슨 리차드슨,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3대 건축가 중 한 명으로서 오늘날까지 그 이름을 떨치고 있죠.


설리번은 미국의 보스턴에서 태어났습니다. 건축가로서의 그의 재능은 어렸을 때부터 돋보였는데요. 설리번은16살의 어린 나이로 MIT공대 건축학과에 입학 후 그는 필라델피아의 건축가 헌트와 퍼네스, 그리고 시카고의 건축가 제니 밑에서 실무를 쌓았습니다.


프랑스의 에콜 드 보자르에서 1년 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시카고로 돌아온 그는 존슨과 에들만 사무실을 거쳐 구조기술사 단크마 아들러와 함께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18년 동안 아들러와 함께하며 설리번은 건축 역사적으로도, 설리번 자신에게도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해준 건물들을 설계했습니다.



미국 최초의 멀티플렉스 건물, 오디토리움 빌딩


호텔, 극장, 식당 및 각종 유흥 시설들이 하나의 거대구조물 안에 들어서 있는 형태의 건물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아주 익숙한 형태입니다. 하지만 19세기 말 미국에서 이런 건물의 출현은 생소하다 못해 충격적인 사건이었죠.


설리번과 아들러가 설계한 ‘오디토리움 빌딩(Auditorium Building)’은 4,200석의 대형 극장에 호텔, 식당, 사무실, 수많은 상업 시설, 그리고 17층 규모의 전망타워를 아우르고 있었습니다. 여러 기능들이 한 자리에 모인 멀티플렉스 건물은 당시 전례가 없는 전혀 새로운 형태였는데요. 그래서 설리번은 오디토리움 빌딩 설계에 고심을 했습니다. 그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건물을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하는 것이었습니다.



▲ 오디토리움 빌딩 전경

설리번은 르네상스 때 유행하던 양식을 세련되게 번안하여 오디토리움 빌딩을 설계했다



설리번은 당시 시카고 건축가들이 다층 건물의 외관에 적용했던 콰트로첸토(Quattrocento, 초기 르네상스 시대를 일컫는 중부와 북부 이탈리아15세기 초 시대양식과 시대개념을 나타내는 용어)를 세련되게 접목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이 건물로 설리번은 시카고에서 주목 받는 건축가가 됐죠.



▲ 오디토리움 빌딩은 외부만큼이나 내부 또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고층건물의 문법, 게런티 빌딩


1871년 미국 시카고는 ‘시카고 대화재’로 도시 건물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목조 건축물이 대량으로 사라지는 참사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발명된 엘리베이터의 등장과 철 생산 단가의 하락이라는 요소가 더해져 시카고의 건물은 수직 상승할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게 됐습니다.


황폐화된 도시를 새로운 방식으로 부흥시켜야 한다는 시카고학파의 대표 주자였던 설리번은 수직 건물의 미학적 형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 게런티 빌딩은 그리스 신전처럼 주초(다리), 주신(몸통), 페디먼트(머리)로 나누어져 설계됐다



푸르덴샬 빌딩이라고 불리는 ‘게런티 빌딩(Guaranty Building)’은 설리번이 이 같은 문제를 완벽하게 풀어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설리번은 고전건축의 정면 구성 요소에서 세 개의 요소(주초, 주신, 페디먼트)를 도출해 고층 건물의 미학적 형식을 표현했습니다.



▲ 수직으로 곧게 뻗은 게런티 빌딩



게런티 빌딩은 마치 인체의 구성처럼 각각 다리, 몸통, 그리고 머리의 삼분법이 적용된 고층 건물입니다. 그는 이러한 기법으로 건물에 수직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안정감을 줬습니다. 수직으로 상승하던 건물은 페디먼트, 즉 머리 부분의 화려한 장식으로 부드럽게 마무리됐습니다. 설리번은 게런티 빌딩과 이와 비슷하게 생긴 웨인라이트 빌딩을 설계하며 고층 건축의 3단 구성을 확립했습니다.




▲ 게런티 빌딩과 닮은 웨인라이트 빌딩의 페디먼트 부분. 세밀하게 조각된 화려한 장식이 아름답다



웨인라이트 빌딩의 가벼운 갈색 테라코타(벽돌, 기와 등을 점토로 성형하여 초벌구이 한 것)재질 장식들은 마치 인체를 감싼 의복과 같이 건물을 한결 멋스럽게 해줍니다.



같은 건물에 다른 모습, 카슨 피리 스콧 백화점


설리번 센터라고 불리는 ‘카슨 피리 스콧 백화점(Carson, Pirie, Scott and Company Building)’은 다양한 매력을 지닌 철골 구조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지그프리트 기디온이 쓴 <공간, 시간 그리고 건축>에도 등장하는데요. 지금까지도 초기 근대주의 건축의 전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 설리번 센터라고 불리는 카슨 피리 스콧 백화점



▲ 카슨 피리 스콧 백화점의 입구. 하나의 거대한 조각 작품을 보는 것 같다



건물 입구 위에 자리한 조각품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장식은 마치 미술관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카슨 피리 스콧 백화점의 지상으로부터 3개 층은 동(銅)과 테라코타로 만들어진 화려한 장식들이 입혀져 있고, 4층 이후로는 장식이 없는 백색 테라코타로 정갈하게 마무리 되어있습니다.


건물의 지상 3층까지는 상업 시설로, 그 이후 층들은 사무실의 용도로 설계됐는데요. 재질과 형태를 달리해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이 필요한 상업 공간과 차가운 지성으로 상징되는 사무 공간을 표현했습니다.



▲ 상업 시설이 있는 층은 화려한 외벽이 감싸고 있는 반면 사무 공간이 있는 층은 단순한 멋이 있다



같은 건물 속 다른 제스처를 통해 설리번은 거대한 시카고의 빌딩 숲에서 각각의 건물이 지녀야 할 태도를 보여줍니다. 또한 건축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고민의 흔적이기도 하죠. 설리번은 당시 사회•문화적인 요구가 자연스럽게 ‘고층건물’이라는 새로운 건축 양식을 등장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


건축과 사회의 유기적 관계를 누구보다 잘 보여주면서도 새로운 트렌드를 창조한 건축가루이스 헨리 설리번. 이 건축계의 거장이 오늘날 존재한다면 어떤 새로운 양식을 보여줄지 한번 상상해봅니다. 다음에도 멋진 건축 이야기로 찾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