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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생의 순간을 담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 드가’

안녕하세요, Sindoh의 신대리입니다.


발레리나 그림으로 친숙한 화가, 에드가 드가. 드가의 화폭은 우리의 삶의 발자취를 좇는 것 같습니다. 현대인들이 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을 마주했을 때 여전히 사색(思索)하게 되는 이유 또한 바로 이 때문일 텐데요.




▲ 발레 수업(1873~1876)_오르세 미술관



드가의 작품에서 오늘날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삶에 대한 의미 있는 고민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드가의 삶과 그 만의 독특한 인상주의 화풍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예술, 그대로의 삶을 살다


드가의 삶을 단어로 표현해야 한다면 ‘예술’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과 무용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의 삶 속에는 항상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함께했습니다.


그의 초기 화폭에는 주로 오케스트라의 모습이 담겨있는데, 이유는 애당초 그는 발레보다 음악에 더 조예가 깊었기 때문입니다. 드가는 바순 연주자인 데지레디오와 친분을 나눴을 뿐만 아니라 그를 중심으로 한 오케스트라의 연주 모습을 집중적으로 그리며, 오페라 등의 공연에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 관현악단의 연주자들(1870)_오르세 미술관



드가의 초기작인 <관현악단의 연주자들>을 보면 작품의 전면에 연주자들을 배치하고 발레리나의 모습은 배경으로 묘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점차 발레에 관심을 드러낸 건 1870년경부터였습니다. 부유한 은행가의 장남이었던 드가에게 발레는 사치스러운 취미가 아닌 일상적인 사교활동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발레’가 화폭의 모티브가 되었던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 공연의 끝, 무용수 인사하다(1876~1877)_루브르 박물관



대부분의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달리 드가는 실내에서 주로 작업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실내 작업 중심의 그의 화풍이 고전주의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사실은 드가는 고질병인 녹내장으로 인해 빛이 강한 날에는 눈이 아파 제대로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외부적 상황들은 그를 발레리나를 화폭에 담는 대표 작가로 성장시켰고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당시 삶의 이면을 냉소적으로 표현해내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한 장의 스냅사진을 그리다


드가는 마치 한 장의 스냅사진처럼 작품에 찰나의 순간을 담았습니다. 그는 파리의 근대적인 생활에서 주로 주제를 찾아 그림을 그렸습니다. 드가에게 19세기 파리라는 도시는 아주 좋은 그림의 소재였습니다. 오스만 남작이 파리 중심부를 재건하면서 오페라 극장, 연극공연장, 공원, 노상카페가 줄지어 있는 넓은 대로가 생겼습니다.




▲ 카페-콩세르 ‘앙바사되르’(1876~1877)_리옹 미술관



드가는 당시 사람들의 순간 순간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예기치 않은 피사체의 움직임이나 무심히 지나쳐 버린 19세기의 일상은 드가의 그림에 천연히 드러납니다. <모자상점>이나 <카페-콩세르 ‘앙바사되르’>를 통해 우리는 19세기 생기 있는 파리지엔의 일상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 모자상점(1897~1886)_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그의 그림이 스냅사진 같은 또 다른 이유는 구도 덕분입니다. 감각적이고 독창적인 그림 구도는 드가가 구현하고자 했던 찰나의 순간을 생동감 있게 표현해 내는 데 일조합니다. 그가 사용했던 그림 구도는 한쪽 면에 치우쳐 있거나 심지어 피사체가 잘려져 나가기도 합니다. 그것은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 스타(1876~1877)_루브르 박물관



그의 작품 중 <스타>를 보면 일본 목판화와 스냅사진의 영향을 받아 주인공이 화면 중심부에서 오른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뒤로 젖힌 발레리나의 얼굴과 왼쪽 팔의 극단적인 단축법은 우리를 마치 2층의 관람석에서 직접 피사체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 압생트 한 잔(1875~1876)_오르세 미술관



이러한 드가만의 독특한 구도는 <압생트 한 잔>에서도 나타납니다. 이 작품에서는 서로 고립되어 있는 두 사람을 대각선으로 응시하는 시점이나 중앙에서 벗어난 곳에 인물을 배치하고 그 사이로 전경에 넓게 트인 빈 공간을 남겨두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구성법은 일본의 채색목판화인 우키요에를 떠오르게 합니다. 실제로 드가는 우키요에 작품의 특이한 각도에서 영감을 얻어 이 같은 구성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파이프를 쥐고 있는 남자의 손은 프레임에 의해 잘려나갔는데, 이것 역시 드가 특유의 비전통적인 구도를 보여줍니다.



무대 뒤의 리얼함을 재현하다


당시 발레는 세련된 예술이라기 보다는 파리신사들의 사교적 장소 격으로 이뤄지는 공연에 불과했습니다. 때문에 무용수들은 노동자 출신 계급이 대부분이었고, 상류층의 후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작품 <스타>를 자세히 보면 화폭 전면에 위치한 발레리나의 뒤편으로 검은 양복의 남자가 보입니다. 자세히 드러나지 않은 남자는 발레리나의 후원자로 아름다운 발레 공연의 이면을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드가의 미술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이면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마주합니다. 그가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질감과 따뜻한 색감으로 그림을 그렸음에도 그의 작품이 건조하고 차갑게 느껴지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어딘지 오늘날과 닮아있는 씁쓸한 당시의 삶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있는 것입니다.




▲ 하품하는 세탁부(1884)_오르세 미술관



드가 미술은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이자, 현재입니다. 드가의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그가 살았던 시대상이 온전히 보이는 듯합니다. 한 세기가 넘는 시간이 흘러도 드가의 작품들이 여전히 오늘날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색(思索)을 주는 이유는 그의 작품 안에 드러난 사회의 이면 때문일 것입니다. 찰나의 순간을 한 장의 사진이 담듯, 드가가 그려낸 생(生)의 순간들은 감춰지지 않고 그의 작품 안에 오롯이 녹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