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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강렬한 색채로 세상을 물들이다 <앙리 마티스>

안녕하세요, 신도리코의 신대리입니다.


20세기 회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 받는 앙리 에밀 브누아 마티스(Henri Emile Benoit Matisse)의 그림은 화려한 색채, 거침없는 붓 터치,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로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을 지녔습니다. 원색의 대담한 배치와 보색관계를 교묘히 살린 표현 기법은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마티스만의 예술 세계를 보여줍니다. 지금부터 강렬한 색채로 세상을 물들인 앙리 마티스의 작품들을 함께 감상해보시죠.



▲ 이카루스(1946)_조르주 퐁피두센터



앙리 마티스, 화가가 되기까지


마티스는 1869년 12월 31일 프랑스에서 곡물상을 하는 아버지와 아마추어 화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20세가 되기까지 예술에 거의 흥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파리에서 법을 공부한 후 사무소의 서기로 일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다음 해 급성 맹장염에 걸려 몇 개월 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마티스는 무료하던 일상을 달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마티스는 변호사가 되기를 포기하고, 화가를 꿈꾸며 에콜 데 보자르(프랑스 국립미술학교)의 교수였던 구스타프 모로의 아틀리에로 들어갔습니다.




▲ 루마니아풍의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1940)_조르주 퐁피두센터



‘자네는 회화를 단순화 할 거야.’ 마티스의 스승 구스타프 모로는 마티스의 그림을 보고 곧장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찍이 마티스의 재능을 알아본 모로는 자신의 화풍을 마티스에게 강요하는 대신 마티스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개발하도록 독려했습니다.


그 후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가며 견고한 예술적 토대를 쌓던 마티스는 1907년에 파블로 피카소와 절친한 친구가 됐습니다. 둘은 함께 자주 어울렸으며 서로의 작품을 교환하기도 했습니다. 둘의 이름이 오늘날 마치 한 쌍의 커플처럼 언급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 모자를 쓴 여인(1905)_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마티스의 뱃속에는 태양이 들어있다.’ 피카소가 독보적인 야수파의 거장 마티스를 가리켜 한 말입니다. 색채 표현에 있어 독보적인 화가였던 마티스는 원색적이고 강렬한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마티스는 훗날 야수파의 지도자로 인정받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의 초기 작품들이 주로 어두운 색조를 띠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브르타뉴에서 여름휴가를 즐기고 난 후 그의 작품은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활력 없는 무생물들 대신 생생한 컬러의 옷감 재현에 집중했고, 자연광의 색조가 가미된 활기를 띤 그림들을 그렸습니다. 


그는 “가장 아름다운 파랑, 노랑, 빨강 등 인간 감각의 저변을 뒤흔들 수 있는 색깔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고집스러운 성향은 <모자를 쓴 여인>과 <마티스 부인의 초상화>를 통해 잘 드러납니다.




▲ 마티스 부인의 초상화(1905)_코펜하겐 왕립미술관



<마티스 부인의 초상화>가 완성되었을 때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이 마티스에게 ‘부인을 왜 아름답게 그리지 않았나?’라고 물었습니다. 마티스는 ‘나는 작품을 통해 아름다운 부인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림을 그렸을 뿐’이라고 답하며 논란을 일축시켰습니다. 단순하고 평탄한 색면, 경쾌하고 활기찬 붓터치는 그림에 생생함을 불어넣으며 마티스를 야수파의 선구자로 만들었습니다.



가위로 그림을 그리는 남자


마티스는 말년에 아내 아멜리와 헤어지고 홀로 고독한 삶을 보냈습니다. 십이지장암 수술을 받은 뒤부터는 거의 모든 시간을 침대에서 누워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화가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새로운 기법으로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해 나갔습니다. 캔버스에 물감을 칠해 그림을 그리는 대신 채색된 종이로 형태를 만들어서 붙이는 식이었습니다. 침대 위에서 붓이 아닌 색종이를 오려 나가며 마티스는 본인의 색채적 자유분방한 감각을 되살려냈습니다.




▲ 달팽이(1953)_런던 테이트 화랑



72세의 마티스는 ‘가위는 연필보다 훨씬 감각적이다’며 꽃과 구름, 별 등을 피사체로 한 여러 작품들을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들 안에는 슬픔의 흔적이나 우울의 감정 따위는 드러나지 않으며 오히려 평화롭고 낙천적인 분위기가 감돕니다. 보통 불우한 처지에 놓였을 때, 마티스는 자신을 비관하며 우울한 감정이 스민 작품들을 창조해낸 여타의 예술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 푸른 누드Ⅳ(1952)_마티스 미술관



<푸른 누드> 시리즈는 마티스가 종이 오리기 작업을 반복해서 선보인 일련의 연작 시리즈물입니다. 작품 속의 인체의 형상은 극도로 단순화되고 채색 또한 파란색으로 제한하여 간결미를 살렸습니다. 평단에서는 ‘푸른 누드’ 연작을 일컬어 ‘마티스가 전성기에 누린 야수주의를 간결한 장식주의로 축약해 놓은 듯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원색적인 색채를 마음껏 활용해 자신만의 화법을 만든 마티스의 작품은 당대부터 지금까지 미술계에 큰 파장을 주고 있습니다. 강렬한 표현으로 세대를 넘어 공감을 이끌어 낸 마티스의 예술 세계를 느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