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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맛있는 히스토리] 문명이 흐르던 실크로드, 국수의 역사가 펼쳐진다

안녕하세요, 신도리코의 신대리입니다.


국수는 오랜 기간 인류의 식탁에서 독보적인 별미로 손꼽히는 식재료입니다. 고명 하나 없는 소박한 차림을 하다가도 때론 범접할 수 없는 화려함으로 변신을 꾀하기도 합니다. 면발의 첫 가닥의 출발이 궁금해진 사람들은 실크로드의 한 지점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비단길을 따라 6,400km란 기나긴 누들 로드(Noodle Road) 여정의 실체를 지금 확인해 보시죠.






미이라와 잠들었던최초의 국수


한 번 들어가면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뜻을 가진 ‘타클라마칸 사막’은 고대 동서 통상로인 실크로드의 주요 길목이었습니다. 비단뿐 아니라 각기 다른 동서양의 음식과 문화가 이 길을 따라 오고 갔습니다.


수천 년 전과 다를 바 없는 거센 모래바람이 1991년의 그날도 어김없이 불어왔습니다. 도로공사를 위해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중국 화염산에 이른 인부들은 수십 개의 구멍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2,500여 년 전 고대인들의 묘지로 밝혀졌습니다.






건조한 날씨 덕분에 미이라는 물론 당시 그들이 먹고 생활했던 음식 출토품의 상당부분이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발견된 그릇에는 구운 양고기, 좁쌀, 밀 그리고 좁쌀과 밀을 섞어 만든 국수가 한 그릇 푸짐히 담겨 있었습니다.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가 국수를 즐겼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좀 더 정확한 단서는 중국 신장 지역에서 발견된 4,000 여 년 전 미이라와 함께 발견된 유물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미이라의 생김새는 서양인이었으며 인물 곁에 있던 밀은 무려 신장에서 4,500km 떨어진 카스피해에서 온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카스피해 사람들이 동쪽으로부터 유라시아 대륙을 건너 중국 신장으로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신장에서 발견된 인류 최초의 국수는 갈돌을 사용해 밀을 가루로 빻아 만든 국물이 없는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탕과 찜을 즐긴 중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지금의 국물이 있는 형태로 변형됐습니다. 현존하는 중국 최초의 농업기술서 ‘제민요술’에 등장하는 ‘수인병’이란 국수 역시 맑은 닭고기 국물을 부어 먹는 형태를 띱니다.



서양의 국수, 파스타의 시작


기원 전 3,000년경부터 유럽인들은 빵을 주식으로 해왔고, 인류는 9,000년전부터 밀 재배를 했습니다. 그런데 왜 다른 유럽 국가들을 제외하고 이탈리아에서만 파스타가 번성했을까요?


14세기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는 동방의 문물과 이국적인 문화를 받아들여 유럽으로 보내는 창구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동양과 문화 교류가 활발했던 베니스와 제네바에서는 파스타를 즐겼기 때문에 파스타가 혹시 동방에서 들어온 것은 아니냐는 가설이 있습니다. 이 주장에 힘을 실어준 인물은 바로 베니스의 상인 ‘마르코 폴로’입니다. 25년간 중국과 아시아를 돌아다녔던 그가 중국의 국수를 이탈리아로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설에 대해 세계적 역사학자 ‘맛시모 몬타나리’ 교수는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가기 전에 이미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를 먹는 것뿐만 아니라 판매도 하고 있었다며 반박했습니다.


파스타 기원의 또 다른 가설은 아랍인 학자 ‘무하마드알 이드리시’가 쓴 지리서에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에서 파스타의 일종인 이트리야가 등장하면서 시작됩니다. 시칠리아는 이슬람의 통치를 200여 년간 겪은 곳입니다. 그 당시 건조 음식 문화가 탁월한 이슬람 문화권의 영향을 받아 건조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는 설이 오늘날까지 가장 유력합니다.


국수뿐만 아니라 이슬람 카라반 상인들은 과일도 건조시켜 오랫동안 보관해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또한 중세 아랍의 문헌이나 요리책에는 건조 국수 요리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어 파스타 기원설에 힘을 실어줍니다.



예나 지금이나 패스트 푸드의 원조국수


우동 한 그릇은 휴게소 단골 메뉴입니다. 빨리 먹고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국수만한 메뉴도 없습니다. 음식이 나오는 시간도, 먹는 데 드는 시간도 10~15분이면 한 그릇 뚝딱하고 비워낼 수 있습니다.


국수는 예나 지금이나 간편한 레시피와 짧은 조리시간, 무엇보다도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서민들이 자주 찾아 먹었던 음식입니다. 바로크시대 나폴리에는 파스타, 에도 시대에는 소바, 베트남은 식민지 시대 후, 배고픔을 쌀국수 ‘포’로 대신했습니다.






우리 역시 장터에 앉아 멸치국물 우려낸 뜨끈한 잔치국수로 급히 허기를 달래고 다시 일터로 향했습니다. 지금도 단돈 3,500원이면 그릇 가득 말간 국수가 소담스럽게 담깁니다.


패스트푸드 국수 이야기에 ‘라면’이 빠질 수 없는데요. 1958년 일본에서 닭 육수로 개발한 최초의 즉석라면은 새로운 제조기술이 더해진 ‘문화적 혁명’이었습니다. 수백 종의 파스타에 대적하는 인스턴트 라면 탄생은 국수의 형태는 물론 맛에 있어서도 한계를 뛰어 넘는 도전이었습니다. 라면은 오늘날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패스트푸드로 자리잡았습니다.



TIP. 문헌상 인류 최초의 국수 ‘수인병’


국수 제조법이 기록된, 가장 오래된 문헌은 1천 4백여 년 전에 쓰여진 중국의 농업기술서 ‘제민요술’입니다. 이 문헌을 보면 어떤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잡아 늘여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고 나옵니다. 밀가루를 곱게 쳐 고기 국물로 반죽을 하고, 손으로 밀어 원형을 만든 다음 양손으로 당겨 나무젓가락 굵기가 될 때까지 늘립니다. 물에서 잡아 늘인 밀가루 음식이라는 뜻으로 고대 중국인들은 이 음식을 ‘수인병’이라 불렀습니다.







<수인병 만들기>


▶ 재 료

반죽-강력분 2컵, 박력분 2컵, 닭고기 육수 1컵 정도, 곤소금 1작은술

닭고기 육수 6컵, 닭가슴살(또는 닭다리) 1쪽, 쪽파 6~8대,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 만드는 법


➊ 강력분과 박력분을 섞어 체에 친 뒤 간을 한 육수로 반죽합니다. 1시간 정도 숙성한 후, 한 번 반죽해서 다시 4시간~하루 정도 숙성합니다.


➋ 손에 기름을 바른 뒤 반죽을 굴려 점점 늘이면서 나무 젓가락 굵기로 만듭니다.


➌ 길게 늘인 반죽을 30cm 길이로 잘라 물에 3~4분가량 담가놨다 꺼내, 끓는 물 위에서 김을 쐬며 손으로 납작하게 늘입니다.


➍ 끓는 물에 국수를 넣었다가 둥둥 떠오르면 건집니다.


➎ 닭고기 육수에 소금 간을 한 다음 닭고기는 건져 살을 가늘게 찢은 뒤 소금과 후춧가루로 무칩니다.


➏ 그릇에 국수를 담고 끓는 육수를 부어 국수를 따뜻하게 데운 뒤 국물을 따라냅니다. 

국수에 닭고기와 쪽파를 얹고 팔팔 끓는 육수를 붓습니다.




잔치국수, 쌀국수, 파스타, 메밀국수, 라면 등 국수는 전 세계인에게 다양한 맛과 모양으로 사랑 받는 식재료입니다. 자주 접하게되는 면요리, 국수의 기원을 알고 먹으면 더 맛있겠죠? 앞으로도 맛있는 히스토리 계속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