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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안녕하세요, 신도리코의 신대리입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생각하면 나라의 수도나 대도시의 한복판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나고야의 작은 도시 가나자와에 위치한 21세기 미술관은 위치부터 건축양식에 이르기까지 산책 중에 우연히 만나는 이웃사촌 같은 친근감을 내세웁니다. 지역주민의 문화공간으로, 관광객들의 쉼터로 사랑 받는 21세기 미술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누구나 즐겁게 다가서는 열린 미술관


가나자와시에 위치한 21세기 미술관의 모토는 ‘공원 같은 미술관’입니다. 실제로 미술관은 공원 내의 푸른 잔디밭 안에 위치해있습니다. 지름이 11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원형 건물은 외벽이 유리로 되어 있어 공원을 산책 중이던 시민들도 관람객으로 변해 미술관으로 향하게 만듭니다.


건물 자체가 원형이기 때문에 앞뒤 구분이 없고, 동서남북으로 펼쳐진 네 개의 출입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미술관의 방향성을 상징함과 동시에 접근성을 높입니다. 또한 건물 상단에 높게 달려있는 조명은 사방으로 빛을 퍼뜨려 개방된 느낌을을 극대화시키는 중요한 장치로 활용됩니다.




▲ 미술관의 내외부는 벽은 모두 유리로 되어 있다



건물의 방향성이 원에 있다면 전체적인 시설의 배치는 확산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상점과 레스토랑 등이 미술관과 수평으로 배치되어 있고, 근교에는 도서관이나 전시실, 관공서 등 지역의 주요 시설들이 위치해있습니다. 이는 미술관이 설립 단계에서부터 지역 사회에 접근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의미를 전달합니다.


유명 건축 잡지 <엘 크로키스>에서는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을 두고 ‘어린이, 노인, 장애인 그 누구든 즐거운 마음으로 다가와서 원하는 만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라 소개했습니다. 예술을 생활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게끔 만드는 가나자와 미술관에게 딱 맞는 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상과 예술, 경계를 허무는 미술관


미술관의 건축 방향이 조금은 소박할지 몰라도, 전시 규모와 전시품들의 질 만큼은 결코 소박하지 않습니다. 열네 개의 전시실은 각각의 크기와 높이가 모두 다른 독립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세계에서 꼽힐만한 크기의 전시실도 있어 좀처럼 보기 힘든 대규모의 전시가 펼쳐지기도 합니다.


각 전시실은 개별적인 통로가 아닌 공동 통로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관람하는 방향이 지시되어 있는 관례적인 미술관과는 달리 관람객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 미술관과 수평으로 배치된 상점 역시 전면 유리로 되어 있어 접근성을 높였다.



안이 훤히 보이는 건물의 외벽처럼 내벽도 전면 유리로 되어 있어 건물의 내부에서는 360도 파노라마로 도시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전시실 내부에도 크고 작은 유리창들이 있어 전시실 밖에서 내부를 바라봤을 땐 관람객들이 유리창이라는 프레임 안을 걷는 예술작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개관한지 만 10년을 맞은 신생 미술관이지만, 연간 160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 지역의 명소가 됐습니다. 이는 가나자와시 전체인구의 3배를 웃도는 수치입니다.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출발한 미술관이 이제는 지역 미술관의 대표적 성공사례로서 새로운 예술공간의 형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의 작품들


21세기 미술관에서는 다양한 이벤트와 전시회는 물론 높은 퀄리티의 상설 전시까지 만날 수 있습니다. 미술관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대부분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됩니다. 전시품들은 모두 1980 년 이후에 제작된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는 작품과 그러한 작품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준 1900년 이후의 작품, 그리고 새로운 창의력을 발휘해 완성된 2000년도의 작품이라는 기준을 두고 엄선된 작품들입니다.


1900년 이후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에서는 일본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근대 예술의 초석을 닦은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통적 기법을 살린 유화에서부터 현대 미술의 거장들의 초기작, 팝아트에 이르기까지 1900년대 초반의 작품부터 1980년대 직전에 이르는 작품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어지는 섹션에서 등장하는 현대 미술작가들에게 준 영향을 고려해 관람하는 것 또한 21세기 미술관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재미입니다.




▲ 키요시 아와즈 | 자화상(1949) | 유화/캔버스




▲ 구사마 야요이 | light(1952) | 크레용/종이 수채화. 잉크



1980년 이후

1980년대는 전위적인 현대 미술에서부터 산업화 속 친환경적인 메시지를 담고자 하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현대 예술의 새로운 격동기라 할 수 있습니다. 조각, 유화, 설치 미술은 물론 한층 발전한 형태의 영상 미디어 예술까지 만날 수 있으며, 다른 미술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거대한 규모의 전시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 아키야마 양 | zone 2(1991) | 도자기




▲ 프란시스 앨리스 | 무지의 끝(1997) | 유화/나무 패널에 캔버스



현대 미술

현대의 예술작품들은 그 기법에서부터 재료에 이르기까지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그림과 조각에 있어서도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며, 건축과 구조물 또한 예술의 범주 안에서 이해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술이 단지 작가의 영역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처럼 관객이 참여함으로써 완성되는 작품들까지 전시되어 있어 능동적인 관람을 가능하게 합니다.




▲ 그림자를 휘감는 모습 | 이쿠라 타카시(2012) | 반도자




▲ 계단 | 서도호(2003) | 투명 나일론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건축이 주는 웅장함과 시민들이 언제나 편히 갈 수 있는 포근함을 함께 갖췄습니다. 그런 점에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상향을 담은 곳으로 꼽히기도 하죠. 공원 같은 미술관 꼭 한 번 들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