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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바다의 기억을 간직한 박물관 <덴마크 해양 박물관>

안녕하세요, 신도리코의 신대리입니다.


코를 찌르는 비린내, 안개 자욱한 방파제는 흔히 부두를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덴마크인들에게 부두는 유익한 문화공간이며 신나는 놀이터입니다. 해양 역사의 보고, 덴마크 해양 박물관 덕분입니다. 버려진 부두 터에 배 모양으로 세워진 박물관은 바다의 기억을 간직한 채 관람객들을 상상의 바다로 이끌고 있습니다.






버려진 부두에 생명을 불어넣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의 북쪽에 위치한 헬싱어. 셰익스피어의 소설 <햄릿>의 배경이기도 한 크론보 성 근처에는 소규모 페리만이 오고 가는 작은 항구가 있습니다. 별 볼일 없는 풍경에 뒤돌아 서려는 찰나, 관광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건물이 있으니 바로 덴마크 해양 박물관입니다.


바이킹의 후예로 해상국가의 자긍심이 높은 덴마크에서 자신들의 해양역사를 자랑하기 위해 세운 박물관은 외양 자체로 박물관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마치 커다란 배가 지하에 숨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박물관은 건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요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60년 전 세워진 후 버려져 있던 부두를 개조해 자연스러운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박물관은 부두가 가지고 있던 쓸쓸하지만 웅장한 느낌을 재현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 외부다리는 통로 겸 전망대의 역할을 한다



박물관은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루어진 시간의 연속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두의 회색 빛 외벽을 유지한 채 지면에서 7M아래로 땅을 파 박물관을 건설했고, 과거의 영광이 재현된 그곳에서 가장 미래지향적인 덴마크 해양산업에 대해 전시하고 있습니다.


지그재그 형태의 외부 다리는 전시실을 이어주는 통로의 역할뿐 아니라 지하와 지면 사이에서 장엄한 주변 환경과 박물관의 구조, 그리고 옛 부두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전망대의 역할도 한다. 밤이 되면 다리에 조명이 들어와, 멀리 들리는 파도소리와 함께 끝이 보이지 않는 밤바다를 건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배의 영혼이 담긴 박물관


내부 전시실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선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관람객이 직접 조작할 수 있는 전시물들과 실제 선내를 떠올리게 하는 좁은 복도, 어두운 조도의 조명은 당장이라도 박물관을 망망대해로 이끌 것 같습니다.




▲ 좁은 복도는 선내를 떠올리게 한다



투명한 창으로 된 외벽 안쪽에는 천장부터 지면에 이어지는 커다란 쇠사슬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배의 영혼이 담긴 박물관이 잠시 지상에 닻을 내리고 쉬고 있는 모양을 연상시킵니다.




▲ 철판으로 된 천장과 삼각형 구도의 계단은 모던한 감각을 보여준다



전시실의 천장은 철골 구조물이 그대로 드러나 있거나 배의 갑판을 연상시키는 철판으로 이루어져 있고, 둥근 곡선보다는 직선을, 사각형보다는 삼각형의 디자인을 택했습니다. 다분히 현대적인 뉘앙스의 디자인이지만 건물 밖으로 보이는 가든과 어우러져 따뜻한 느낌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또한 해양 전시실뿐 아니라 카페, 강당, 강연장 등 시민들에게 쾌적한 여가 공간을 제공하는 배려도 돋보입니다.




▲ 외부다리는 통로 겸 전망대의 역할을 한다



헬싱어는 도심과의 거리와 상대적으로 저 개발된 시장 때문에 손꼽히는 관광지는 아니지만, 해양 박물관과 지역사회의 연계를 통해 해양 산업의 심장으로 발돋움하려 하고 있습니다. 바이킹의 후예들이 만든 해양 박물관에서 당신이 몰랐던 바다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덴마크 해양 박물관의 전시품들


덴마크 해양 박물관은 덴마크 해양 산업의 역사를 과거에서부터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덴마크뿐 아니라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진 해상 무역. 170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해상무역의 궤도를 따라갈 수 있는 전시품들을 만나보겠습니다.


바다사나이들의 흔적


드넓은 바다 위에서 생존을 위해 싸운 선원들. 덴마크 해양 박물관에서는 사랑하는 가족을 육지에 두고 바다로 나갔던 그들의 애환과 생활을 만나 볼 수 있다.




▲ (좌) 선원이 사용하던 나침반 / (우) 가족들이 선원에게 건넨 기념품



험난했던 바다 위의 여정


모든 것이 열악한 바다 위에서는 식사도, 물과 전기 등의 자원도 풍족하지 못했다. 해상 무역뿐 아니라 세계 대전 당시 치열하게 펼쳐졌던 해상 전투는 선원들의 생활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었다. 비스킷 하나로 하루를 버텨야 했던 고난의 여정 또한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 1800년대 선원들이 먹던 비스킷



▲ 전기등 대신 사용하던 쉽랜턴



찬란한 해상무역의 전성기, 대항해시대&제 2차 세계대전


더 많은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한 열강의 대륙 진출이 계속되고, 차와 도자기 등 오리엔탈 문화에 대한 서구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해상무역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은 대항해시대, 해상에서 구슬땀을 흘린 노력의 결과였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은 많은 사상자를 낸 전투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해상무역의 새로운 전성기를 연 계기이기도 했다.




▲ 발타자르 데너作 | 공작부인의 티파티 | 캔버스에 오일 | (1732)



▲ 아비드 뮐러作 | 항구 | 조형물(1937)



오래된 부두 자리에 배 모양으로 지어진 덴마크 해양 박물관의 건축물은 박물관 본래 속성에 너무나 잘 맞아 방문객에게 예상된 재미와 즐거움을 줍니다. 기존의 것을 활용해 건축물의 목적을 잘 드러낸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