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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익숙함보다 편한 낯선 영화 <비포 선라이즈> 속 ‘심리적 거리감’

안녕하세요, 신도리코의 신대리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상상을 해봤을 것입니다. 어떠한 편견도 없는 상태에서 만난 누군가와의 심리적 거리감은 불편하면서도 묘한 편안함을 주고, 그 안에서 평소에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설렘을 느낄 수 있죠.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두 주인공을 사랑에 빠지게 만든 ‘심리적 거리감’에 대해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 출처: 컬럼비아픽처스



심리적 거리감 조절 = 관계 형성의 Key


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람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더욱 허심탄회하게 속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큰 지출을 감수해야 하는 구매를 결정할 때도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이름도 모르는 네티즌의 의견이나 판매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합니다. 이는 낯선 사람과의 심리적 거리감이 주변인보다 멀기 때문입니다. 


심리적 거리감이 멀수록 목표 지향적 대화를 나누기 쉬운데, 목표 지향적 대화란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둘 뿐, 상대가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대한 생각은 희미한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편견이나 주관적 생각이 반영될 수 있는 친밀한 관계보다 객관적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낯선 관계에서 오히려 신뢰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죠.




▲ 출처: 컬럼비아픽처스



하지만 심리적 거리감이 멀다고 해서 무조건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심리적 거리감이 너무 멀면 관계형성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의 심리적 거리를 분석한 ‘켈의 법칙’에 따르면 동료 간의 거리감이 1이라면 바로 윗 상사와의 거리는 2가 되고, 직급이 한 단계씩 멀어질수록 심리적 거리감은 제곱으로 커집니다. 만약 조직이 권위적이라면 그 심리적 거리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권위적인 조직은 서로의 친밀감이 떨어지고 의사소통에 벽이 생기며,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이룰 수 없어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낯선 서로에게 끌리는셀린느제시


대학생인 셀린느(줄리 델피)는 방학을 맞아 부다페스트에 사는 할머니를 만난 뒤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제시(에단 호크)라는 미국인 청년과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유학 간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 제시는 실연의 상처만 안고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빈으로 향하는 중이었습니다. 소년 같은 제시와 감수성이 풍부한 셀린느는 대화가 잘 통하는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교감을 나눕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던 제시는 셀린느에게 비엔나에서 함께 내릴 것을 제안하고, 그녀는 그와 함께 하루를 보내기로 마음먹습니다. 소소한 취향에 대한 이야기부터 삶에 대한 심오한 이야기까지 나누며 서로에게 푹 빠진 셀린느와 제시. 둘은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6개월 뒤 빈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합니다.




▲ 출처: 컬럼비아픽처스



셀린느와 제시가 하룻밤 만에 서로에게 그토록 끌렸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말로 운명과도 같은 사랑이었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토록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를 만나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익숙하지 않은 부다페스트의 기차 안, 비엔나의 거리 등이 설렘을 안겨줬을 수 있습니다.




▲ 출처: 컬럼비아픽처스



게다가 기차 안의 승객들도, 거리의 사람들도 모두 일상에서 언제나 만나는 사람들이 아니며 그들이 거리에서 만나는 예술가들 역시 낯설기에 신비롭고 매력적인 존재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셀린느와 제시는 서로가 마냥 가깝지 않은 심리적 거리감에서 오는 매력과, 그보다 더 먼 거리에 있는 낯선 타인들 속 가장 친밀한 존재라는 이중적인 관계에 사로잡혀 서로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케팅에도 이용되는심리적 거리감


심리적 거리감이 관계 형성뿐 아니라 의사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마케팅 업계에서도 이를 이용한 여러 전략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기업이나 영화 제작사가 신상품이나 개봉작을 알리는 데 광고뿐만 아니라 인터넷 후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객관적 정보를 알고 싶은 소비자의 심리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또한 동일한 정보라도 익숙한 인물이 아닌 낯선 인물로부터의 정보를 더욱 신뢰하는 경향을 이용한 마케팅을 벌이기도 합니다. 금융, 자동차, 고급 가전제품의 모델이 유명 연예인에서 고급스럽고 신뢰감 있는 이미지를 가진 일반인이나 전문가로 이동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적절한 거리 조정을 통해 소비자의 심리를 움직이는 마케팅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우리 역시 심리적 거리감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심리적 거리감을 통해 소중한 사람은 물론, 많은 정보와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신뢰감을 주고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다면, 셀린느와 제시를 이어준 심리적 거리감을 활용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비포 선라이즈 (1995)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출연: 에단 호크, 줄리 델피


줄거리

소르본느 대학생인 셀린느(Celine: 줄리 델피 분)는 부다페스트에 사는 할머니를 만나고, 가을 학기 개강에 맞춰 파리로 돌아가는 길이다. 셀린느는 옆자리의 독일인 부부가 시끄럽게 말다툼하는 소리를 피해 뒷 자석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거기서 제시(Jesse: 에단 호크 분)라는 미국인 청년과 우연히 얘기를 나누게 된다. 제시는 마드리드에 유학온 여자 친구를 만나려고 유럽에 왔다가 오히려 실연의 상처만 안고, 다음날 떠나는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비엔나로 가고 있는 중이다. 아직도 꿈꾸는 소년 같은 제시와 감수성이 풍부한 셀린느는 몇 마디 이야기하지 않은 사이에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낀다. 짧은 시간 동안 자신들이 갖고 있는 많은 생각들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어 어느덧 비엔나 역에 도착한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던 제시는 셀린느에게 같이 내릴 것을 제의하고, 셀린느는 제시와 함께 비엔나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