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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버려진 발전소가 미술관으로 재탄생하다 <테이트모던 갤러리>

안녕하세요. 신도리코의 신대리입니다.

 

영국 런던의 중심에는 연 500여만명이 방문하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Tate Modern)갤러리가 있습니다. 99m 높이의 거대한 굴뚝을 포함해 산업 시대의 옛 화력 발전소 건물을 그대로 보존한 테이트모던은 변화무쌍한 현대미술을 즐기는 사람들의 놀이터인데요. 21세기 리노베이션 건축의 새로운 기준이 된 테이트모던 갤러리를 소개합니다.

 

 

 

 

부수지 않아도 새로워질 수 있다

 

영국은 보편적으로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국가지만, 현대 시각 예술에 있어서 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파격적이고 진보적입니다. 현대 영국의 젊은 작가들은 흔히 ‘YBA(Young British Artist)’라고 불리며, 새롭고 실험적인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데요. 2001년 개관한 테이트모던 갤러리는 이러한 영국 젊은 미술의 실험 정신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곳입니다. 갤러리는 원래 화력 발전소로 쓰이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으로, 원래는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라는 이름으로 1981년 가동이 중지될 때까지 런던 시내의 전력공급을 담당했습니다. 발전소는 전원 스위치를 내린 후 여러 해 동안 런던 한복판에 버려진 산업 폐기물로 남아 있었습니다.

 

발전소 기능을 잃고 폐허처럼 방치되어있던 건물에 새로운 ‘생명’이 움트기까지는 10년이 걸렸습니다. 발전소가 갤러리로 재탄생하는 작업은 우선 국제공모를 통한 건축디자인을 결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요. 심사를 거쳐 스위스 건축가들인 헤르조크와 데 뮤론의 제안이 당선작으로 뽑혔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거대한 발전소 건물을 세계에서 가장 큰 미술관 중 하나로 만들었죠.

 

 

 

 

그들이 제시한 새로운 미술관은 파격적이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격언이 당연시되던 20세기 건축의 불문율을 깨뜨리고 신축이 아닌 리노베이션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화력 발전소 건물 상부를 박스 형태로 증축하는 방식을 통해 가로 길이 150m, 5층 높이의 적벽돌 건물과 세로로 길게 배치된 창문, 99m의 거대한 굴뚝 등 기념비적인 원형을 그대로 보존했습니다. 3,400m²에 달하는 내부의 터바인실은 터바인 기계만 제거한 채 곳곳에 박힌 H자 철제빔과 천장 크레인까지 살려 미술관 로비로 탈바꿈했죠. 근대 런던의 묵직한 기억과 수많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과거의 흔적 속에서 재생의 의미를 찾다

 

테이트모던 갤러리의 건물 외벽은 벽돌로 된 직육면체이며, 모두 7층입니다. 건물 한가운데 솟아있는 굴뚝은 반투명 패널을 사용하여 밤이면 등대처럼 빛을 내도록 개조했지요. 스위스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 ‘스위스 라이트(Swiss light)’라고 부르는 이 굴뚝은 오늘날 테이트모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옥상 층에는 우윳빛 유리로 둘러싼 2개 층을 증축하여 기존과 현재의 조화와 함께 템스 강의 밤 풍경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내부의 터빈 홀과 기관실은 현대미술의 여러 양상을 보여주는 ‘예술저장소’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는 과거의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 변화가 아닙니다. 테이트모던 갤러리에서는 건물 어디에서나 과거의 시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테이트모던 갤러리의 가장 큰 특징인 발전소 건물 외관을 거의 그대로 두는 것은 물론 기존의 흔적을 최대한 남겨둠으로써 ‘재생’의 의미를 극명하게 각인시킨 것이지요.

 

갤러리 내부공간의 마감과 세부 디자인은 발전소로 쓰일 때의 주요 재료였던 철재와 목재를 가능한 한 그대로 유지해 기존 환경과 새로운 기능의 조화를 꾀했습니다. 터빈 홀과 더불어 10개의 전시공간들로 구성된 3, 4, 5층에는 상설 및 기획전시공간이 배치되었습니다.

 

 

공간의 재탄생이 도시의 재탄생으로

 

테이트모던 갤러리는 건물뿐만 아니라 도시의 재탄생에도 일조했습니다. 지역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전략적 목표 아래에 출발한 갤러리인 만큼, 지역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그들에게 우선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했지요. 이러한 세심한 배려는 지역주민들에게 테이트모던 갤러리는 바로 자신들의 것이라는 연대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이 미술관 덕분에 과거 가난한 동네였던 사우스 뱅크사이드 지역에서 2,400여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었습니다.

 

현재 이곳은 런던시민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나아가 미술관을 중심으로 이 지역 자체가 런던 시의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버려져 있던 공간이 새롭게 태어남으로써 도시 자체가 새로운 문화의 중심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발전소와 미술관이라는, 일반적으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앞뒤의 두 기능이 기존 건축물의 공간 질서를 유지하면서 공유될 수 있는 것은 시간의 흔적을 지워버리지 않고 그대로 이어지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오래되거나 버려졌다고 해서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것을 더해 가치를 재창조했다는 점에서, 테이트모던 갤러리는 단순한 건축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