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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가스 저장고, 오스트리아 빈의 일상이 되다 <가소메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건물들이 많습니다. 특히나 큰 건물들은 흉물로 남아 처치가 곤란해 지역적으로 ‘미운 자식’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외형으로 보나 내부 구조로 보나 업사이클링이 어려웠던 비엔나의 가스저장소 가소메터가 깔끔하고 세련된 주거시설로 우리에게 다시 다가왔습니다. 오늘은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된 가소메터를 소개합니다.



도심 속 애물단지의 변화


오스트리아 정부가 1899년 사회기반시설로써 건설한 가소메터(Gasometer)는 비엔나 전역의 가로등과 가정에 가스를 공급하던 저장소였습니다. 80여 년이 지난 1984년, 천연가스가 도시의 주 연료로 대체됨에 따라 가소메터는 완전히 가동을 멈췄습니다. 가동이 중지된 이후, 내부 요소들은 정리되었지만 그 외양만 흉물로 남게 되었죠.


산업화된 지역 내에 위치한 지리적 요건, 그리고 건물 내부의 공간적 특성 때문에 여러 업사이클링 시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대안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빈 시의 랜드마크로 여겨졌던 근대적인 사회 기반시설이 버리기도 곤란하고 쓸 수도 없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죠.




▲ 원형 아트리움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아트리움A



빈 시는 가소메터 건물을 재활용하기 위해 건축가들과 논의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리모델링 방안을 찾는 데 난감한 상황에 직면했는데요. 4동으로 이루어진 가스 저장고의 거대한 규모에 적용할 만한 적합한 기능을 찾기란 쉽지 않았고, 건축 예산을 확보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고 합니다. 오랜 고민 끝에 빈 시가 찾아낸 답은 사람들의 삶을 이 건물 안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죠. 이에 ‘쿠프 히멜블라우’, ‘만프레드 베도른’, ‘빌헬름 홀츠바우어’, ‘장 누벨’ 등 4인이 각각 설계한 ‘공동 주택’이 가소메터의 부활을 위한 방안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새로운 4개의 공간으로 재탄생하다


건축가들은 4개의 원기둥 건물을 하나씩 나눠 맡아 ‘예전 건물의 외형을 남긴다.’는 기본적인 조건 안에서 그들만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켰습니다. 프랑스에서 초청된 ‘장 누벨’은 지하철역과 연결되는 A동에 널찍한 중앙 보이드(Void·커다란 빈 공간)를 설치하고 다양한 생활편의시설을 마련했습니다.


건물 사방에 거울 벽이 설치되어 빛을 반사하는데 이 때문에 ‘빛의 궁전’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또한, A동의 1층 바닥이자 지하의 천장에 해당하는 부분을 투명 유리를 사용해 건설했는데요. 유리 천장을 통해 건물에 쏟아지는 햇빛이 고스란히 지하 쇼핑센터에까지 이르러 원래 가스 저장고의 지하였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밝고 화사한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 방패모양의 이 건물은 가소메터에서 유일하게 새로 지어진 ‘기숙사’다.



한편, ‘쿠프 히멜블라우’가 설계한 가소메터 B는 시각적으로 가장 두드러지는 건물입니다. 기존 가스 저장고에 방패 모양의 학생용 기숙사 건물을 덧붙였기 때문이죠. 은색 스테인리스 스틸과 유리로 만들어진 이 건물로 인해 100년 묵은 가소메터에 세련된 현대적 이미지가 덧붙여졌으며, 오래된 건물에 새로운 콘텐츠가 더해졌음을 알리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 테라스와 미니정원을 가진 가소메터 C의 내부 전경



가소메터 C를 설계한 ‘만프레드 베도른’은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건축가로서 빈의 주거 및 산업유산의 재생을 선도해왔습니다. 만프레드 베도른은 나머지 3동과는 다르게 최대한 기존 가소메터의 느낌을 고스란히 유지하고자 했는데요. 이러한 방침에 따라 기존 건물의 벽과 거의 동일한 각도로 6개의 주거 타워를 세웠습니다.


그는 가스 저장고에 친환경적인 디자인 요소를 접목해 안쪽 테라스마다 작은 정원을 조성해 도심에 푸름을 더했다고 합니다. 화초와 담쟁이가 어우러진 정원은 공동주택에서 보기 어려운 신선한 녹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개방된 천장을 통해 자연적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환기가 이루어지므로 이곳의 테라스 정원은 해가 갈수록 푸름을 더합니다.




▲가소메터 D의 중앙 중정에는 조성되어 있는 정원



마지막으로 ‘빌헬름 홀츠바우어’가 디자인한 가소메터 D는 기존건물 안에 3개의 주거 타워가 세워졌습니다. 가소메터 A, B, C와 다르게 가소메터 D의 3개 타워는 중앙의 중정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지하에는 빈의 도시 자료관이 있습니다. 가스 저장고의 원통 모양은 하나의 ‘제한’일 수밖에 없었죠. 이에 설계자들은 거주자들의 안락한 생활공간을 위해 ‘원통’이라는 옛 건물의 제한을 외부에서 뛰어넘으며, 때로는 제 것으로 수용하며 새로운 건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담은 가소메터


수명이 다 한 건물을 재활용한 건축물이 가지는 매력은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되었다는 점이죠. 가소메터 또한 원래 가스 저장고였지만 건축가들의 공동 작업으로 멋진 주거공간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옛 공장 지대의 황량함에 녹색의 생기를 더한 공간인 가소메터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자연을 품은 중정을 내려다보고, 따스한 햇빛으로 일광욕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스 저장고 안에서 식사를 하고 쇼핑을 하고 친구들과 만나고 대화도 합니다. 마치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다를 바 없이 말이죠.


한때 시민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던 사회기반시설로, 제 가치를 발휘하지 못했던 지역적 애물단지 시절을 거친 가소메터는 건축 디자이너들의 손을 거쳐 새 생명을 얻게 되었는데요. 거대한 낡은 요새 같아 보이는 외관 안으로 펼쳐지는 친환경적이고 세련된 공간으로 가소메터는 이제 시민들의 주거를 책임지는 효율적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