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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명작 속 숨은 경제학] 3D 프린터를 입은 복제 명화, 대체재가 되다



미술품은 독점 공급자에 의해서 유일한 생산품으로 제작됩니다. 이 때문에 미술시장에서는 진품을 똑같이 모사하여 복제품으로 파는 행위가 보편적인데요. 경제학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대체재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복제기술이 발전되어 3D프린터를 통해 명화가 오브제로 탄생하고 있습니다. 입체적으로 빚어진 복제 명화를 통해 대체재의 정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전세계인들이 동경하는 작품 <모나리자>



모나리자 ┃ 레오나르도 다 빈치 ┃ 1503~1506 ┃ 나무판 위에 유채



이탈리아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초상화 중 하나입니다. 누구를 모델로 하여 그려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지만, 가장 유력한 설로는 피렌체의 상인 조콘도의 아내인 리자를 화폭에 담은 것이라고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모나리자>를 완성하기 위하여 악사랑 광대를 불러 리자 부인의 기분을 항상 즐겁고 행복하게 함으로써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표정, 편안하게 무릎에 높인 손 등을 표현할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보는 사람에게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여 수많은 예술 작품들의 모티브가 되고 있습니다. 



3D복제명화의 탄생


복제품은 원작자가 손수 만든 작품을 똑같이 본 떠 만든 상품을 말합니다. 한 화가에 의해 한 작품밖에 생산되지 않는 미술품의 특성상, 작품을 모사한 복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미술 시장에서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중국에는 협업 방식을 통해 모작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경제 특구가 있을 정도입니다. 



모작 생산의 메카, 다펀 유화촌


중국 선전시에는 중국에서 최초로 만든 모작 생산 경제 특구, 다펀 유화촌이 있습니다. 이곳은 전 세계 모작 유화의 60%를 생산하는 가장 큰 규모의 명화 모작 생산공장입니다. 마치 제조공들이 자동차 부품을 생산해 내듯 화가 여러 명이 스케치와 채색 작업 등의 그림 작업을 분담하여 작품을 효율적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에 따르면 2010년 다펀 유화촌에서 생산된 미술 작품의 총 매출을 약 6,300억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다펀은 원래 주민 300여 명이 농업에 종사하던 마을이었으나, 1989년 홍콩 화가들이 이주하면서 ‘유화촌’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이후 낮은 임대료, 저임금, 홍콩과 근접한 입지 조건으로 점차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다펀 유화촌에서 생산되는 작품의 절반 이상은 파블로 피카소, 구스타프 클림트, 클로드 모네 등 유명 화가 작품의 모작으로, 낯익은 명화의 복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곳의 매력입니다.



이처럼 본래는 사람이 캔버스에 진품을 모사함으로써 복제품들이 생산되었지만, 21세기인 지금은 최첨단 기술로 제작된 3D 프린터로 명화가 복제되고 있습니다. 3D프린터를 통해 입체적으로 만들어진 복제 명화는 물감을 덧입힌 두께나 섬세한 붓 터치까지 정교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시각으로 미술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촉각으로 미술을 향유하는 명화를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명화를 손으로 감상하다





신비로운 미소를 품은 모나리자의 얼굴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핀란드 수도인 헬싱키에서 진행 중인 ‘언씬 아트 프로젝트(Unseen Art Project)’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3D프린팅으로 재현했습니다. 


핀란드 출신의 프로그래머 마크 딜론(Marc Dillon)에 의해 진행 중인 사업으로, 2차원 캔버스에 그려진 세계적인 걸작을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입체적으로 재현하는 작업입니다. 즉, 시작장애인도 촉각으로 미술을 느끼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 작품 감상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언씬 아트 프로젝트(Unseen Art Project)’는 전 세계에 무료로 미술 작품 3D도면을 배포하고 있어, 3D프린터만 있으면 누구나 출력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도서관이나 학교에서 3D데이터를 출력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3D모델을 이용한 아트 갤러리를 완성하는 것이 그의 목표라고 합니다.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은 ‘인디고고’등 유명 크라우딩 펀딩 사이트를 통해 모금 중입니다. 3D프린터가 보편화 되는 세상, 시각장애인들이 명화를 손으로 직접 만지고 느끼면서 입체 작품으로 재탄생한 명화를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전시회, '반 고흐 느끼기'


2015년 4월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박물관에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이 막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전시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이 프로그램은 세계적인 명화를 만지며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되었습니다. 



손으로 만져 볼 수 있는 고흐의 <침실> 복제품 (출처: 반 고흐 박물관)



방문자들은 큐레이터의 작품 설명을 듣는 동시에 3D프린터로 제작된 고흐의 그림 복제품들을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었습니다. 반 고흐 박물관 측은 고흐가 어느 부분에서 그림물감을 두텁게 칠했는지 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정교하고 입체감 있는 복제품들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고흐의 작품 <침실>을 3차원으로 꾸며 놓은 공간에서는 남프랑스의 라벤더 꽃향기도 맡아볼 수 있었습니다.


‘반 고흐 느끼기’와 같은 촉각 전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루브르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런던 국립미술관에서도 같은 콘셉트의 전시를 진행한 적이 있고,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프라도 미술관에서도 3D 프린터를 활용해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전시를 한 바 있습니다. 




대체재로서의 복제품





명화의 복제품은 진품 명화를 대신하는 대체재입니다. 대체재란 서로 다른 재화에서 동일한 효용을 얻을 수 있는 재화를 말합니다. ‘꿩 대신 닭’의 관계인 셈입니다. 예를 들어 대체재는 버스와 기차, 커피와 홍차, 버터와 마가린, 샤프와 연필처럼 서로 대체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 효용이 좀 더 큰 쪽을 상급재(上級財), 작은 쪽을 하급재(下級財)라고 명명합니다. 명화의 복제품은 진품보다 낮은 효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하급재 입니다. 또한, 복제품이 진품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으므로 재화의 완전 대체재가 아니라 불완전 대체재입니다. 따라서 가격 또한 진품의 1%에서 0.0001%에 못 미치기도 합니다.



복제품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 1892~1940),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저자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진품의 가치를 복제되지 않는 원본만의 독특한 분위기, ‘아우라(Aura)’로 지칭하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예술의 원작이 갖는 신비한 분위기나 예술의 유일성을 뜻하는 ‘아우라’를 붕괴한 복제품이 오히려 예술을 발달시킵니다. 그는 복제품을 감상하는 행위를 통해 대중들이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예술을 비평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규정했습니다.





모작은 미술관에 찾아가지 않아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3D프린터로 복제한 명화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3D복제명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술 작품을 참신한 방법으로 탐구하고 비판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즉, 3D프린터로 인한 복제기술의 발전은 명화를 오브제로 재탄생 시키며 일상 깊숙이 새로운 방식의 예술 작품 감상을 가져온 것입니다.





경제학 개념에 따르면 명화의 복제품은 진품의 하급재이자 불완전 대체재로서 진품에 비해 그 가치가 열등합니다. 반면, 철학가 벤야민은 복제품이 진품의 유일성을 붕괴함으로써 오히려 예술의 발달을 가져온다고 주장했습니다. 명화의 복제품을 바라보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경제학의 개념에 따라 해석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철학가 벤야민의 생각처럼 해석해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