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 연재

버려진 석탄 탄광에서 피어난 문화의 꽃 <촐퍼라인 탄광>



과거 광부들이 땀방울을 흘리던 독일의 촐퍼라인 탄광. 폐광 후 철거의 위기에 놓였던 이곳에 예술의 꽃이 피어났습니다. 기존 시설은 고스란히 유지한 채 새로운 옷을 입고 변신하여 현재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촐퍼라인 탄광을 소개합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거듭난 탄광



촐퍼라인 탄광의 1949년 당시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독일 에센의 촐퍼라인 탄광은 ‘검은 황금’이라 불리는 석탄의 제조 시설을 갖춘 유럽 최대 탄광이었습니다. 이곳은 1851년부터 1986년까지 약 135년 동안 루르 지역의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축이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석탄 산업의 쇠락과 함께 폐광되었고, 이 곳이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재개발하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1986년 12월 23일, 탄광 운영 마지막 날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노스트라인 베스트팔린 주는 ‘탄광을 부수고 새로 짓는 대신 원형을 유지하되 변화를 추구하는 방안’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1989년 ‘엠셔 공원 건축 박람회’를 조직해 이곳에 맞는 적절한 재생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탄광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유지한 채 건설되었다



그 결과 2001년 촐퍼라인 탄광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탄광이 폐쇄된 후, 짧은 기간에 이루어낸 쾌거였습니다. 당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위원회 보고서에 ‘촐퍼라인 탄광은 매우 예외적으로 근대 건축이 추구한 디자인 정신을 실현하고 산업시대를 대표할 기념비’라고 언급된 점에서 촐퍼라인 탄광만의 차별적인 도시재생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문화 예술의 메카가 되다 


당시 촐퍼라인 탄광 부지 전체에는 85개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었습니다. 주정부는 기존의 부지가 가진 상징성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능을 접목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의지는 가장 먼저 실행한 ‘레드닷 디자인 박물관’에서 분명이 드러났습니다. 



기존 보일러실의 느낌이 묻어나는 레드닷 디자인 박물관



이 박물관은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탄광의 핵심 설비 시설 중 하나인 12번 수직갱도의 안쪽에 자리한 박스 형태의 보일러실을 개조해서 탄생한 건물입니다. 그는 보일러실의 외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부 공간을 흰색으로 인테리어 해 본디 녹슨 철 구조물과 한 눈에 대비를 이루도록 했습니다. 옛 것과 새 것이 절묘하게 대비되어 조화를 이룬 셈 입니다. 


오늘날 세계 3대 디자인상으로 꼽히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 등장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공간이 바로 탄광의 보일러실을 리모델링한 장소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디자인이라 부를 만 합니다. 이곳에서는 1년 내낸 디자인 관련 전시회, 강연, 세미나가 열려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12번 수직갱도의 뒷 모습 (채굴된 석탄을 끌어 올리는 권양탑)



2002년부터 주정부는 30만 평에 이르는 부지에 대한 자세한 마스터플랜을 만들었고, 이후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가 주도하여 12번 수직갱도•1,2,8지역•코크스 제조 공장 등 3개 영역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촐퍼라인 탄광의 코크스 공장



그는 석탄 세척 공장을 재활용하여 ‘루르 박물관’을 짓고, 코크스 제조 공장 안에 아이스링크와 수영장을 건설하였습니다. 렘 콜하스는 새롭게 건립하는 건물은 모두 외곽에 배치함으로써 촐퍼라인 탄광 분위기를 고스란히 유지했습니다. 또한 녹지와 수변 공간의 조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하여, 황량한 탄광 지대에 녹색의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1993년 중반까지 접근금지구역 이었던 코크스 공장은 아이스 스케이트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코크스 공장에 냉각수를 공급하던 수로의 모습)



방문자 센터의 에스컬레이터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이뿐만 아니라 촐퍼라인 탄광의 기능적 동선과 선로 등을 보행로, 휴식 공간, 테마 공간으로 새롭게 디자인하고, 이외의 공간은 다양한 문화예술 관련 기업들이 입주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유럽의 문화 수도로 탄생하다 


촐퍼라인 탄광이 성공적으로 재생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마스터플랜에 전략적으로 장기적인 산업 시설 유치가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정부는 도시계획, 건축, 산업 디자인, 광고,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등을 중심으로 디자인 관련 모든 산업이 촐퍼라인 탄광에 모일 수 있도록 대외적으로 홍보하고 적극 지원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뉴욕 현대미술관을 포함해 세계적인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참여한 디자인 전시 ‘엔트리 2006’은 이러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행사 중 하나였습니다. 이와 같은 행사는 촐퍼라인 탄광이 디자인의 미래를 선도할 장소임을 암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엔트리 2006 촐퍼라인 당시 모습 (출처: 안드레아스 뮤셀 홈페이지)



촐퍼라인 탄광 안에는 디자인 관련 개인과 기업, 학교, 관련 재단, 공공기관 등이 모두 자리함으로써 독일을 대표하는 창조 산업의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또한, 레드닷 디자인 박물관에서 루르 박물관으로 이어진,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촐퍼라인 탄광의 재건축적 방향성은 이곳이 독일을 대표하는 디자인 산업의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폐광된 촐퍼라인이 유럽을 대표하는 문화적 공간이 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기존의 탄광의 모습을 오롯이 간직한 채로 말입니다. 오늘날 촐퍼라인 탄광에서 생산하는 문화는 옛날 검은 황금이라 불리던 석탄의 가치를 능가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생산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