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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명작 속 숨은 경제학] 선택으로 가치를 창출하다



뒤집어 놓은 소변기를 <샘>이라는 미술 작품으로 발표한 한 마르셀 뒤샹은 기성품에도 예술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고 당당히 말합니다. 예술품의 가치에 대한 뒤샹의 창조적인 발견은 경제학의 출발점과 맥이 닿아있습니다. 경제 문제 역시 수많은 선택 사항 중 무엇을 결정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가치가 생산되기 때문입니다. 



현대미술의 아버지, 마르셀 뒤샹


미술사는 마르셀 뒤샹 이전의 미술과 그 이후의 미술로 나눌 수 있습니다. 뒤샹이 남성용 소변기, 자전거 바퀴 등의 기성품을 예술 작품으로 발표한 후 미술품은 반드시 작가의 창작물이어야 한다는 관념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미학에서는 ‘예술은 자연 상태에 있는 대상의 모방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하는데, 뒤샹은 이러한 모방론에 대해 반항했습니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



그는 독일의 철학자 막스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아 예술가의 철학만 있다면 기성품도 얼마든지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우리 주위의 익숙한 물건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마르셀 뒤샹, 그는 물질주의 시대에 대량 생산된 상품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당시 자본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거듭났습니다. 뒤샹을 필두로 현대미술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그의 예술에 대한 파격적인 접근 방식은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팝아트 등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다다이즘이란?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은 다다이즘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남아있습니다. 다다이즘은 미술사의 사조 중 하나인데요. 다다는 본래 프랑스어로 말이 서툰 유아기의 어린아이가 장난감 목마를 말하는 소리입니다. 즉,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 다다이즘 입니다. 


사조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다다’는 작가들의 태도였습니다. 반문명적, 반전통적 예술운동인데요. 이들은 명성을 오랫동안 유지해 온 것들, 빈번히 미술의 대상이 되었던 것들을 조롱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존의 미술을 파괴했습니다. 이중 대표적인 기법으로는 콜라주(Collage), 프로타주(Frottage), 파피에 콜레(Papier Collar), 데페이즈망(depaysment), 자동기술법(automatism)등이 있습니다.




남성용 소변기가 예술 작품으로



샘┃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1917┃혼합재료(Technique mixte)



일상품과 예술 작품의 경계를 허문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샘>입니다. 마르셀 뒤샹은 뉴욕의 한 상점에서 소변기를 구입한 후 <샘>이란 제목을 붙여, 1917년 앙데팡당 전시회에 리처드 머트라는 가명으로 출품했습니다. 이것이 그 당시 예술계를 뒤흔든 이른바 '리처드 머트 사건' 입니다. <샘>은 단지 남성용 소변기를 90도 옆으로 눕힌 작품으로 언뜻 보기에도 단순한 사물일 뿐입니다. 


당시 앙데팡당 전시회는 심사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그러나 <샘>은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미술 작품으로 인정해야 하느냐에 관해 논란이 일었고, 결국 그의 작품은 전시되지 못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샘>이 천하고 비도덕적이며, 창작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야말로 전통 미술의 개념을 뒤덮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뒤샹의 그림을 감상하는 관람객이 함께 인쇄된 우표



작품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뒤샹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리처드 머트를 옹호했습니다. 마르셀 뒤샹은 잡지 『장님』에서 예술가가 의도적으로 직접 미술품을 제작하지 않았더라도, 예술가가 지각하고 전시하는 행위를 통해 어떠한 오브제라도 하나의 미술품으로 변용시킬 수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뒤샹은 "머트가 <샘>에 쓰인 변기를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는 물건 하나가 새로운 발상에 의해서 새 이름을 얻었으니 그것의 일상적·실용적 의미는 사라졌다."고 주장했습니다.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넘버 2>가 인쇄된 우표



단순한 소변기는 생활에서 늘 볼 수 있는 하나의 물체일 뿐이지만 소변기가 전시장이라는 공간에서, 게다가 예술가의 서명이 쓰인 상태로 전시대에 올라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된다는 것이 뒤샹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생활품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고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시하고 새로운 제목을 붙임으로써 예술 작품의 반열에 올려 놓았습니다.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의 선택


뒤샹이 일상품을 예술 작품으로 선택하여 가치를 창출한 것은 경제학의 출발점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경제학에서도 선택에 따라 가치가 창출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학은 선택의 과학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경제학자는 사람들이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 합리성에 기초해서 의사결정을 하고, 자신에게 가장 만족을 주는 선택을 한다고 유추합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고, 하나의 길을 정하면 가능성을 가진 다른 길은 포기하게 됩니다. 그 갈림길에서 인간은 특정 길을 선택했을 때 오게 되는 결과에 대해 각자 나름대로의 계산을 합니다. 그 계산 결과를 분석해 스스로에게 가장 효율적인 대안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합리성을 전제로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경제적 행동에 대해서 예측 가능한 논리를 정립하였습니다. 


뒤샹의 선택이 경제학적인 선택처럼 예측 가능한 합리성에 기초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오브제를 발견해서 선택했고, 예술 작품으로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해 냈습니다. 특정한 대상을 캔버스에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사물에 제목을 붙이거나 창의적인 해석을 함으로써 예술 작품으로 탄생시킨 것입니다. 



창의적인 해석을 통해 예술작품이 탄생한 사례



화장실에 있건 전시장에 있건 변기 그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뒤샹의 변기가 예술작품이 되는 것은 작가가 그것을 선택하고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선택을 통해서 가치를 생산하는 것, 사람의 선택이야말로 새로운 가치 창출의 근원인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널리 통하는 개념을 일컬어 ‘통념’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뒤샹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우리 사회에 ‘늘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시선과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파격’의 행위는 세상을 더욱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드는 발전의 과정입니다. 여러분도 평소와 다른 선택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