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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예술의 정원으로 소생되다 <베스터 가스공장 문화공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베스터 가스공장은 밤거리의 운치를 더하는 가스등을 켜기 위해 쉼 없이 돌아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천연가스의 등장으로 가스 공장은 그저 하나의 환경 파괴 주범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시(市)의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오염 부지 베스터 가스공장을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재탄생 시킨 힘은 바로 ‘창의적 역발상’이었는데요. 아티스트들의 흥얼거림이 넘치는 ‘21세기형 예술 정원’으로 다시 태어난 베스터 가스공장 문화공원을 소개합니다.



병든 가스공장의 재활


19세기 중반 런던 만국박람회에서 세계 최초 가스등이 등장한 이후 유럽의 많은 도시가 경쟁적으로 거리에 가스등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대규모 가스공장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암스테르담 역시 이를 위해 1903년, 베스터 가스공장을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산업 시설이라기엔 상당한 건축미를 지닌 베스터 가스공장은 여타 종교 및 관공서 건물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베스터 가스공장의 1903년 당시 모습 (출처: 베스터가스파브릭 홈페이지)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천연가스의 등장으로 베스터 가스공장은 쓸모도 없을뿐더러 심각한 환경문제를 초래하여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암스테르담 시 관계자들과 시민들은 심각하게 오염된 부지를 소생시키기 위해서는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체계적인 복원 작업을 통해 베스터 가스공장을 친환경 공원으로 조성하는 편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고(故) 다이애나비 추모 분수 (출처: 위키피디아)



고(故) 다이애나비 추모 분수를 설계한 미국의 세계적인 여성 조경 건축가 캐서린 구스타프슨이 베스터 가스공장 문화공원의 디자인을 맡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도시계획가나 건축가가 아닌 조경 건축가에게 디자인을 맡긴 것은 시민들을 위한 최적의 공원을 조성하려는 암스테르담 시의 의지였습니다. 그녀는 미적인 공간으로서의 재생이 아닌 자연과 사람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편안함과 공간 안에서의 소통에 중점을 뒀습니다.



문화 저장고의 탄생



각종 문화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개조한 가스저장고 내부의 모습



가스저장고라기에는 믿어지지 않는 화려한 분위기의 레스토랑



베스터 가스공장 문화공원은 크게 동서를 가로지르는 보행자 축을 기준으로 4개의 각기 다른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보행자 축은 이 4개의 영역의 경계이자 공간을 하나로 통합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보행축의 동남쪽 운하에 인접한 기존 건물들은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합니다. 



가스저장고가 있던 부지에 캐서린 구스타프슨이 조성한 연못



가스저장고를 포함한 부지는 대규모 공연장을 위한 공간으로 설정하였는데 주목할 것은 3개의 가스저장고 중 헐린 2개의 저장고가 있던 부지에 연못을 조성하였다는 점입니다. 오염이 특히 심했던 이곳을 완벽히 정화해 맑은 물이 흐르는 연못으로 조성한 것은 구스타프슨의 역발상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의 향연이 투명한 빛깔의 연못에 비칠 때면 한 폭의 그림으로 펼쳐집니다. 



원형의 가스저장고가 웅장한 콘서트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머지 하나의 가스저장고는 오페라, 파티, 콘서트, 패션쇼 등 각종 대규모 행사를 여는 복합공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폭 60m에 이르는 이 원형 공간은 햇빛을 받으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냅니다. 



에스프레소 공장 내부 모습 (출처: 베스터가스파브릭 홈페이지)



남서쪽에는 창작센터를 지어 예술가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가스공장의 보일러실은 유럽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극장, 작업 관측소는 ‘에스프레소 공장’이라는 이름의 커피숍으로 변신했습니다. 



2014년 홀랜드 축제 당시 베스터 가스공장 모습 (출처: 바흐트랙)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축제인 홀랜드 페스티벌(Holland Festival)도 이 공간을 활용합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가스저장소 내부를 실내악 연주홀로 변형하였을 땐 일주일 내내 바흐의 곡이 연주되기도 했습니다.



정부, 기업, 시민의 하모니


베스터 가스공장은 더 이상 죽은 공간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웃음과 행복이 머무는 문화공원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한 곳입니다. 버려진 쓰레기에 대한 리사이클의 역발상은 공간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성공적으로 보여줬습니다. 



베스터 가스공장 내 건립된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현재 극장-전시장-식당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부•기업•시민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합니다. 삶의 터전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합작품인 것입니다. 베스터 가스공장 문화공원 역시 시민들의 투표를 통해 녹지와 문화•예술이 어우러진 친환경 문화공원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지구는 신이 만들었지만 네덜란드, 이 작은 나라는 자신들이 만들었다고 할 만큼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네덜란드인이기에 10여 년에 걸쳐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문화공원을 조성할 수 있었습니다. 



▲ 베스터 가스공장 문화공원에 길게 펼쳐진 물길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는 암스테르담 시민들



도시 재생의 선례를 그대로 수용하고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가지고 있던 역사적인 공간을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새롭게 해석한 ‘베스터 가스공장’, 이 프로젝트에서는 네덜란드인들의 ‘자기 것’에 대한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정신이 전해집니다.


베스터가스파브릭 문화공원 프로젝트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www.project-westergasfabriek.nl/english



베스터가스파브릭은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개선하면서도 기존 공법을 보존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돋보이는 업사이클링 건축물입니다. 다양한 문화를 융합시킨 네덜란드인들의 개방적 사고가 베스터 가스공장 문화공원을 지금도 진화시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