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꼭대기에 숨어있는 페루의 공중도시 마추픽추와 지하 18층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터키의 지하도시 카파도키아. 남반구와 북반구를 각각 대표하는 두 유적지는 인간의 무한한 도전정신과 과학문화의 정교함을 제대로 보여주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 위치한 공중도시와 생각지 못한 지하에 거대하게 자리잡은 지하건축세계를 함께 소개합니다.

 

 

잉카 제국이 만든 공중도시의 신비로움, 마추픽추

 

현지어로 ‘오래된 도시’라는 뜻을 품고 있는 잉카문명의 공중도시 마추픽추는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 있는 신비로운 유적지입니다. 더 이상 기차가 달릴 수 없는 종착역인 마추픽추 역을 빠져나오면 당장에라도 눈앞에 공중도시가 펼쳐질 것 같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마추픽추는 보이지 않습니다.

 

마추픽추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는 웅장한 봉우리로 둘러싸인 가파른 길을 꽤 올라가야 합니다. 해발 2,400m의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안데스 산맥 꼭대기에 가면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마추픽추에는 여러 신전과 궁전을 중심으로 잉카인들이 살았던 주택, 곡식과 작물을 재배했던 계단식 경작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마추픽추 정상 언저리에 있는 계단식 경작지

 

 

마추픽추는 누가 왜 건설했고, 어떤 사람들이 처음 이곳에 살았으며, 이토록 신비롭고 아름다운 도시가 왜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만 했는지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한 곳입니다. 잉카인들이 살았다는 것을 빼고는 모두 추측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있던 마추픽추는 1911년, 고고학자 히람 빙엄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히람 빙엄은 기록과 자료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생명의 위험도 무릅쓰고 안데스 산맥을 탐험해, 꼭꼭 숨어있던 마추픽추를 발견했습니다.

 

그로부터 마추픽추를 발견한 지 100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떤 용도로 이곳을 사용했는지, 건설한 시기가 언제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유적지와 유물, 자료를 토대로 학자들이 추측한 결과, 15세기 중반 잉카인들이 궁전을 만들고 왕의 은신처로 사용하기 위해 건설되었을 거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마추픽추의 다양한 유적지 중 가장 먼저 둘러보아야 할 곳은 ‘인티우아타나’입니다. 인티우아타나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유적지로, 넓은 바위 안에 기둥 모양으로 깎은 돌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잉카제국의 언어인 케추아 어로 ‘인티’는 태양을 뜻하고, ‘우아타나’는 연결이란 말입니다. 즉 인티우아타나는 태양을 잇는 기둥이라는 뜻이죠. 

 

 

▲ 화강암으로 만든 유적지 인티우아타나

 

 

인티우아타나는 해시계와 비슷한 기능을 하지만 잉카인에게는 단순한 해시계가 아니라 태양을 붙잡아 바위에 묶어놓는 성스러운 장소였습니다. 동짓날이 되면 신관이라 불리는 제사장이 잉카인들이 숭배했던 태양을 붙잡아 이곳에 묶어 두는 의식을 치렀다고 합니다. 잉카인들은 이렇듯 인티우아타나를 매우 신성하게 여겼고, 이를 증명하듯 잉카인이 건설한 도시의 중심에는 항상 인티우아타나가 세워져 있습니다.

 

마추픽추의 정상 언저리에는 아직도 잉카 식으로 살아가는 케추아 족의 민가 한두 채와 계단식 경작지가 있습니다. 잉카의 후예인 케추아 족은 오늘도 밭갈이를 마친 귀로에 또는 제삿날이나 장례식 때, 성소 ‘유아카’에서 대지의 여신 ‘파차마마’에게 기도를 하고 치성을 드립니다.

 

 

▲ 신비한 모양새가 특징인 카파도키아

 

 

지하도시를 탐험하는 색다름, 터키 카파도키아

 

아나톨리아 고원 중앙부 화산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카피도키아는 페르시아어로 ‘아름다운 말(馬)’이 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이름 그 대로 자연의 신비와 인간의 슬기가 조화를 이룬 곳으로 지구상 몇 안 되는 명소로 손꼽힙니다.

 

카파도키아는 지상과 지하의 기암괴석과 그 속에 인간이 삶의 터전으로 마련한 도시와 마을, 교회가 하나의 조화로운 복합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약 300만 년 전 해발 4,000m의 화산이 폭발하면서, 인근 수백km 지역으로 흘러간 마그마가 오랜 세월 홍수와 비바람에 씻기고 깎이며 닳아져 온갖 신비한 모양새를 갖추게 됐습니다.

 

 

▲ 인간의 무한한 도전정신과 과학문화의 정교함을 제대로 보여주는 세계문화유산

 

 

카파도키아 땅에서는 푸른색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서인지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황량한 땅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도 1900년 이전부터 터키 공화국이 설립된 1923년까지 몇 차례의 공백을 제외하고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착해 살았던 곳입니다.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은 동굴 속에 지하도시를 건설해 넓은 생활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바깥의 덥고 건조한 기후를 피해 서늘하고 습기가 살아있는 암굴 속에서 삶의 지혜를 익혔습니다. 그 속에는 사랑방과 안방이 있었고, 창고와 부엌도 있었습니다. 아래층에는 소나 노새를 위한 우리를 만들고, 2〜3층으로 파고 들어가 대가족 제도를 형성했습니다.

 

이곳에 살았던 기독교 수도자들은 암굴을 파서 교회를 짓고, 벽면과 천정에 프레스코를 그려 자신들의 신앙심을 표출했습니다. 무려 1,500개에 달하는 바위 교회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괴레메 마을에 있는 13개의 바위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 그려져 있는 갖가지 프레스코 화폭들은 로마 시대부터 비잔틴 시대까지 기독교인과 수도승들이 지녔던 정신세계와 생활 면모뿐 아니라, 초기 기독교의 성립과정을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 카파도키아의 또 다른 미지의 세계, 데린쿠유

 

 

카파도키아에는 또 다른 미지의 세계가 있습니다. 응회암 바위를 뚫고 건설한 거대한 지하도시 ‘데린쿠유’입니다. 지나가는 목동이 우연히 발견한 데린쿠유의 입구는 원래 사람의 머리 하나만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이었는데, 사실 이 속에는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단한 거주공간이 숨어있었습니다.

 

사람이 머리를 숙여 겨우 지나갈 만한 좁디 좁은 통로를 통해 상하좌우가 수십 갈래의 미로로 이어집니다. 수많은 방과 검게 그을린 부엌, 방앗간과 창고 등이 있고, 중앙에는 모임의 장소로 사용된 듯한 화랑, 한쪽 구석에는 교회나 묘지의 흔적이 있습니다. 미로 중간중간에는 큰 바위 문이 있어 비상시 이곳을 막아 필요한 방어를 한 흔적이 뚜렷합니다. 수만 명이 불을 때어 빵을 구워도, 그 연기는 신비한 통로를 통해 흔적도 없이 분산되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과학적인 건축구조를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 기독교 수도자들이 암굴을 파서 지은 바위 교회

 

 

카파도키아 인근에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지하도시의 존재가 40여 개나 더 있습니다. 발굴 중인 와즈코나크 지하 대도시는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인데, 더 놀라운 사실은 수십 개의 지하도시를 서로 연결하는 비밀통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알면 알수록 놀라운 카파도키아 지하 암굴도시의 실체는 우리가 언젠가는 밝혀내야 할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현대의 시각으로 볼 때 불가사의라고 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는 건축물이 있습니다. 공중도시 마추픽추와 지하도시 카파도키아 역시 그렇습니다. 그 당시 기술력과 조건으로 어떻게 이런 건축물을 세웠을까 생각하면 더욱 경이롭습니다. 사람이 모여 만든 ‘맨파워’와 유구한 시간의 흐름이 이와 같은 위대함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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