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신도리코 블로그 신도리안입니다. 지난 2020년은 신도리코 창립 60주년이었는데요. 신도리코는 올해 새롭게 기획된 [Start, New Sindoh] 코너를 통해 그동안 신도리코가 걸어온 발자취를 되새겨보고 현재와 미래를 다시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시간으로 ‘신도의 공간’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는데요. 신도리코의 변화와 혁신이 이뤄지는 공간! 국내 사업장부터 확인해볼까요? 


신도리코의 중심 <서울> 


▲ 신도리코 서울본사 본관동 


도약과 혁신의 시작  


서울은 신도리코 본사가 있는 곳입니다. 1970년 착공한 뒤 1971년 5월 17일 준공식을 거쳐 6월부터 전자복사기 BS-2 생산을 시작하고 전자복사기 대량 생산과 다양한 제품 출시로 우리나라 복사기 산업의 전환점을 마련했죠. 공장과 함께 본사와 영업 조직까지 둥지를 틀면서 생산과 판매 조직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기초 공사부터 기둥 하나까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독보적인 외관과 내구성은 물론 최신식 설비까지 뽐내고 있습니다. 


한편 성수동 공장은 품질관리 활동에 체계적인 시스템을 도입했는데요. 당시 일반 생산현장에는 도입되지 않은 큐씨디 퀄리티(QCD Quality), 코스트(Cost), 딜리버리(Delivery) 개념을 적용했으며 작업 지시서, 주문지 등 각종 서류 표준화와 업무표준, 품질관리 등 각종 업무 매뉴얼을 적용해 업무 개선을 이뤄냈습니다. 


또한 직원 참여제도를 도입해 우수 제안자에게는 포상과 해외연수 기회도 제공되었고 품질 개선을 위해 외부 전문강사를 영입한 분임조 활동도 시작했습니다. 이후 활발한 제품 개발 및 생산이 이뤄졌고 1982년에는 업계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죠. 


▲ 신도리코 서울본사 기술연구소 


컨트롤 타워 


생산과 매출이 급증하는 등 사세가 확장되자 본사 사옥도 새롭게 단장하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 10월에는 지하 1층 지상 9층의 사무동을 완공하고 1992년 7월에는 기술연구소 건물을 새롭게 완공하며 설비와 장비도 대거 확충했죠. 신사옥 건설과 함께 성수동 공장도 신규설비를 도입하고 증설이 이뤄졌습니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산공장이 활성화됐고 성수동공장의 생산기지 역할은 분산되었는데요. 자연스럽게 서울은 신도리코의 컨트롤타워 기능과 개발 기능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년간의 준비와 공사 끝에 1999년 7월 7일 서울 본사는 새단장을 마쳤고 이듬해 2000년에 건축가협회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죠. 


▲ 신도리코 서울본사 Sindoh Additive Laboratory 


깊어지는 뿌리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점차 서울 본사는 헤드쿼터 및 연구개발 기능에 집중했습니다. 2012년 공장 시설과 창고동을 수리해 전시장과 교육장으로 2013에는 전시장 및 교육장이었던 SDNA동을 연구공간으로 탈바꿈하며 본사는 본관동, 사무동, 연구동, C&F동, 서비스동으로 다시 정립되었습니다. 특히 C&F동은 외부 손님과 직원들에게 신도리코의 기업역사를 만날 수 있는 테라스를 조성하고 제품전시장과 임직원교육장을 별도로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2013년 상반기에는 본사 연구동 리모델링도 진행해 개발자들의 창의력을 높이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는데요. 신도리코 연구원들은 보다 넓어진 공간에서 기술력을 축적하고 자체 설계한 글로벌 디자인 신기종을 계속해서 선보였습니다. 


▲ 신도리코 서울본사 기술연구소 로비 


이후 신도리코는 3D비즈니스에 과감히 뛰어들었습니다. 실제로 현재 본사 C&F동 1층에는 3D전시장을 마련해 신도리코의 3D프린터 제품들과 제품에 담긴 기술을 보여주는 다양한 영상물도 선보이고 있죠.


2000년 이후에도 신도리코의 혁신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흑백에서 컬러로! 2D에서 3D로! 영역을 확장하며 글로벌 무대로 나아가는 신도리코인데요. 2D&3D 프로들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서울본사는 신도리코가 가는 길의 출발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도약의 발판 <아산> 


▲ 신도리코 아산사업장 


큰 걸음의 시작 


아산공장은 신도리코의 새로운 성장을 이끈 곳입니다. 1970년대 중반 복사기와 팩시밀리 사업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미래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계획됐는데요. 1983년 추가 부지를 확보해 사무기기 소모품을 생산하는 제조공장을 완공했고 1985년부터 제품을 양산하면서 화려하게 급부상했습니다. 1983년부터 지금까지 각종 복사기를 필두로 디지털복합기, 주변기기, 주요 소모품과 부품 등을 생산하며 회사 성장의 핵심사업장으로 활기가 넘쳤다고 할 수 있죠. 


대량생산 역량까지 갖춘 아산공장은 서울공장을 빠르게 대체하며 생산의 무게 중심을 자연스럽게 이동했는데요. 기존 설악관에 기숙사 한라관, OPC 감광체공장 가동 등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습니다. 


▲ 신도리코 아산사업장 역사관 


다양한 가치의 발현  


시간이 지나면서 드럼, 토너 등 주요 부품과 복합기 같은 회사의 주력 완제품을 아산공장에서 생산하기 시작했고 그 역할이 보다 확고해 졌는데요. 본관동에는 예술 작품 전시는 물론 인공폭포, 카페형 휴게공간 등이 들어서면서 문화공간이자 쉼터의 기능을 갖추기도 했고 교육의 핵심 공간으로도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대규모 연수원을 마련해 신도리코 직원들 및 전국 파트너들의 영업 서비스 직원들을 교육하고 2000년에는 연수원 옆에 40주년 역사관을 개관하여 기록문화부터 복사기, 팩시밀리로 이어지는 역사를 정리했죠. 


한편 아산은 신도리코의 정신적 요람이기도 합니다. 성수동공장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오랜 기간 생산의 핵심기지 역할을 수행했고 소모품, 복사기, 레이저프린터와 디지털복합기 등의 메인공장으로 차근차근 영향력을 넓혀갔죠. 칭다오 공장이 준공된 이후 생산 이원화를 통해 아산 공장의 물량이 대폭 이전되고 하노이 공장까지 가동되며 점차 아산공장은 직접생산보다 생산관리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 신도리코 아산사업장 (좌)연수원 (우)카페테리아 


마더 팩토리 


신도리코는 아산공장 생산 역할이 변화함에 따라 명칭을 아산사업장으로 변경하며 새로운 기능을 부여했습니다. 현재 아산사업장은 생산기술과 물류, 제조 지원 등의 경험이 집약된 베이스캠프로써 칭다오와 하노이 각 공장에 기술을 지원하고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데 역량을 쏟고 있는데요. 국내 물류 거점으로 활용하면서 서비스 부품 공급기지로서의 리페어센터, 렌탈 비즈니스 지원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이 밖에도 해외시장에 판매되는 제품의 품질관리 기능도 맡아 글로벌 서비스의 모델을 만들고 신규 비즈니스 모델의 개발과 생산에서도 축적된 생산노하우를 발휘해 보다 나은 품질을 구현하는 등 아산 사업장은 신도리코의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이번 시간에는 서울과 아산 등 국내 사업장을 중심으로 살펴봤는데요. 다음 시간에는 글로벌기업으로 우뚝 서는 신도리코의 해외 사업장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신도리코 60년의 발자취를 차근차근 살펴볼 수 있는 시리즈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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