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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명작 속 숨은 경제학] 고흐와 독점공급자

안녕하세요. 신도리코의 신대리입니다.


명작의 가치는 화가가 세상을 떠난 후에 더 높아집니다. 세계적인 화가 고흐 또한 살아 있을 때 그림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는 드물었지만, 사후에 작품 대부분의 가격이 대폭 상승했는데요. 가난에 허덕이며 고달프게 화가 인생을 이어간 고흐의 일대기를 그려 보고, 그의 작품을 통해 독점공급자의 정의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꽃 피는 아몬드 나무—빈센트 반 고흐—1890—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빈센트 반 고흐를 말하다


우울과 고독으로 채워진 고흐의 삶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극적입니다. 화가의 길을 선택하기 전부터 고흐의 삶은 평범하지 않았는데요. 엄격하고 딱딱한 성직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유년시절부터 아버지와 갈등을 겪었습니다. 자라서도 안정적인 직업을 얻지 못하고 방황했고 경제적으로 가족들에게 의존했습니다. 자괴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던 고흐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그 일이 자신의 천직이라는 것을 깨닫자 그전에는 볼 수 없던 집중력과 열정을 발휘하여 자신의 에너지를 오롯이 그림에 쏟았습니다.



해바라기—빈센트 반 고흐—1888—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그는 사물이나 인물, 풍경을 관찰하며 그가 받은 감정을 그림에 담아내려고 노력했는데요. 세밀하고 사실적이게 대상을 묘사하기보다, 다채로운 빛과 색으로 사물을 캔버스 위에 그려냈습니다. 그는 일평생 불운과 실패의 연속으로 늘 가난에 시달리며 괴로워했습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끝내 붓을 놓지 않고 그림을 그린 고흐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합니다.



높은 가격으로 판매된 고흐의 작품

오늘날 고흐의 작품은 미술 시장에서 고가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는 그의 그림이 귀하여 수요는 증가하는데도 불구하고 공급량은 증가하지 않는 데 있는데요. 일반적인 시장에서는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면 생산자들이 시장에 공급량을 늘려 가격 인상을 막습니다. 그러나 미술경제시장에서는 독점공급자인 화가가 사망하면 더는 재화가 생산되지 않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고흐의 작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게 되면, 초과 수요의 압박이 시장에서 그대로 가격의 폭발적인 상승으로 나타납니다. 



의사 가셰의 초상—빈센트 반 고흐—1890—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800여 점이 넘는 고흐의 수많은 그림 중 가장 높은 가격에 팔린 작품은 <의사 가셰의 초상>입니다. 이는 반 고흐가 죽은 지 100년 뒤인 1990년, 일본인 기업가 사이토 료에이에게 8,250만 달러(약 1,000억 원)로 낙찰되었습니다. 반 고흐를 치료하던 의사인 가셰는 고흐처럼 정신적 문제가 있었던 사람으로 고흐는 가셰에게서 “형제와 같은 완벽한 우정.”을 발견한 것 같다고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쓴 적도 있습니다. 또한, 가셰와 자신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유사하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두 사람의 내면이 투영되어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그림은 가셰의 초상화이면서도 동시에 반 고흐의 자화상인 셈입니다. <의사 가셰의 초상>은 고흐가 자살하기 6주 전 그린 그림으로 고흐의 마지막 시간이 오롯이 담겨있는 미술품입니다.



미술경제시장의 법칙 


독점 시장의 문제

그렇다면 미술 시장에서 그림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될까요. 미술품의 경우 한 화가에 의해서 생산되는 작품은 다른 재화와 구별되는 독특하면서도 이질적인 상품입니다. 제조업의 경우 규격화된 방식으로 상품이 제조되기 때문에 제품의 품질이 동일하고, 다수의 사람이 동일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재화 시장과는 다르게 미술 시장에서 화가는 자신의 그림을 미술 시장에 공급하는 유일한 생산자이며 순수 독점공급자입니다. 미술품의 공급자(화가)는 한 명이며 수요자(일반 미술 향유자)는 다수이므로 공급자와 수요자가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가격이 아무리 많이 올랐다 하더라도 공급량을 더 이상 늘릴 수 없기 때문이지요.


까마귀가 있는 밀밭—빈센트 반 고흐—1890—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정보의 비대칭성

미술품 창조자와 그 향유자들 간에는 재화의 가치에 관한 지식이 비대칭적입니다. 작품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생산자 자신이거나 그 가치를 인식하는 몇몇 소수 사람뿐이고, 일반 대중은 그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수요자들이 일반 재화와 달리 미술품의 질이나 가치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얻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미술 시장에서는 일반 재화 시장과 달리 제한된 물량과 비대칭적인 정보로 인해 시장 가격에 변동이 생기기 쉽습니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을 이용해 경매에서 이득을 취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영화도 있습니다. 영화 ‘베스트오퍼’에서 주인공 버질 올드만은 러시아 풍경화가 얀스키의 초상화가 경매에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내 자신이 진행하는 경매에 온 손님들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보리스 그레고리안의 문하생 작품이며 작품명은 ‘갈증’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얀스키가 일생 동안 그린 초상화 3장 중 1장인 귀한 그림이었지요. 그는 경매 참여자들을 속인 뒤 친구를 경매에 참가시켜 2만유로(약 3000만원)의 헐값에 그림을 사들입니다. 친구에게 수고비를 두둑이 챙겨주고도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미술품 애호가들의 대부분은 작품의 정확한 가치를 잘 모릅니다. 예술품이 지닌 가치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안목과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미술품의 가격이 너무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생각하셨나요? 일반 재화의 시장과는 달리 특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 미술품 시장인 것 같습니다. 꼭 반 고흐의 작품처럼 유명하지는 않더라도, 오늘은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을 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