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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일상의 아름다움을 사랑한 화가 요하네스 얀 베르메르

안녕하세요, 신도리코의 신대리입니다.


요하네스 얀 베르메르(Johannes Jan Vermeer)의 그림은 매우 간결합니다. 정적인 모습의 한 두 사람만이 화폭에 멈춰있습니다. 그는 극적인 빛을 통해 명작을 완성했습니다. 화려할 것 없는 일상의 아름다움이 담긴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17세기 네덜란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일상의 아름다움을 사랑한 화가, 베르메르의 작품세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우유 따르는 여인(1632~1675)_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일상의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다


베르메르는 주로 일상이 담긴 풍속화를 그렸습니다. 이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16세기 말, 긴 전쟁을 거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네덜란드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군주제가 아니었습니다. 왕족도 귀족도 없는 네덜란드는 시민 계층이 사회의 주역이었고, 화가들은 귀족과 교회 대신 일상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독립 후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룬 유복한 시민 계층은 회화의 새로운 수요층이 됐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집을 장식하기 위해 요구했던 것은 대형 종교화가 아닌 친근한 그림, 즉 풍속화였습니다. 베르메르 역시 이러한 세태를 따라갔습니다.




▲ 회화의 기술, 알레고리(1665~1666)_ 빈 미술사 박물관



베르메르의 절정기는 1660년대입니다. 막 받은 듯한 편지를 열심히 읽고 있는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과 창가에 서서 진주 목걸이를 목에 걸려고 하는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들이 바로 그 당시 그려졌습니다.




▲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1662~1663)_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동명의 영화와 소설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베르메르의 대표작으로, 여성의 얼굴만을 클로즈업 하여 그린 작품입니다. 이것은 당시 많은 작가들이 인물 그림을 훈련하기 위해 제작하곤 했던 트로니(Troni)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수수께끼처럼 감춰진 베르메르의 삶


베르메르는 1632년 물의 도시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델프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미술상을 운영했기에 어린 베르메르는 일상적으로 그림을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베르메르는 알려진 것이 없어 수수께끼 화가라고 불렸지만 최근 그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많은 사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베르메르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동향의 카타리나 볼네스라는 연상의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장모 마리아 틴스가 둘의 결혼을 반대해 베르메르가 개종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결혼 후 8년이 지난 1661년에서야 장모가 결혼을 승인했다는 문서가 남아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종교상의 이유가 아닌 다른 까닭이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일각에서는 베르메르의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이 위조지폐범이었던 점, 명문가가 아닌 가정에서 자랐다는 점에서 베르메르의 집안 자체를 반대했단 설도 있습니다.




▲ 천문학자(17세기경)_루브르 박물관



베르메르는 1662년 30세가 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빠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면서 장모인 마리아 틴스에게 사위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델프트 사상 최연소로 성 루가 길드(중세와 근대 초기 유럽의 화가 및 예술가들의 조합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림에 대한 독점적 판매권을 갖고 있어 화가들은 이 길드에 가입해야 활동할 수 있었다)의 이사를 맡았다는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제까지 알려진 ‘동시대인에게 무시당한 고독한 천재’라는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베르메르 캔버스에 담긴 화법의 비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작품 속 어두운 배경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소녀는 ‘네덜란드의 모자리자’로 칭송 받을 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푸른 터번 사이에 반짝이는 진주귀걸이는 작품의 포인트가 되는 오브제입니다. 진주의 질감이 자세히 표현되어 있지는 않지만 빛을 받아 찰나에 반짝이는 진주의 느낌이 천연하게 드러난다.


그림을 마주한 이들을 긴장시키는 소녀의 커다란 눈과 살짝 벌어진 입술은 이 작품만의 묘한 매력을 더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특정 모델은 없다고 주장하는 전문가가 대부분입니다.




▲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1666)_마우리츠하이스 왕립미술관



베르메르의 화폭 안에는 그의 삶처럼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숨어 있습니다. 그의 작품이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렌즈를 통해 실제경치를 투사하는 장치)가 투영하는 화상 위에 덧그린 것이란 의혹이 그것입니다.


영국 건축가인 필립 스테드만은 그 가설을 토대로 신빙성 있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베르메르의 몇 개 작품에 등장하는 방의 모형을 만들고 거기에 묘사된 여러 모티프의 미니어처를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카메라 옵스큐라가 있었다고 생각되는 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촬영을 했습니다. 그 결과는 실제 작품의 구도와 매우 닮아있었다고 합니다.


베르메르가 투영된 상 위에 그림을 덧칠했는지 아닌지 여부는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이 오늘날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완벽한 구도 때문이 아닙니다. 화폭에 녹아 든 리얼한 17세기 풍경과 생동감 넘치는 감성 표현 덕분입니다. 이것이 상이 투영된 캔버스에 그림을 덧대 그렸다 해서 그 작품의 가치를 평가 절하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 연애편지(1666)_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동명 영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작품이 주는 느낌을 토대로 화가와 하녀의 러브 스토리를 풀었습니다. 명작이 주는 느낌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는 그림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줍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작품을 감상해도 좋지만 각자의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 역시 명화를 감상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번 기회에 베르메르의 작품을 각자의 시각으로 감상해보세요. ^^